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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순간] 호출하신 분 계신가요?

  • 작성자 사진: 라라레터
    라라레터
  • 2022년 3월 3일
  • 2분 분량

‘XXXX 번 호출하신 분 전화 와 있습니다.' 라는 소리가 카페 내 울려 퍼진다. 그 순간 모든 사람의 눈이 번쩍 뜨인다. ‘몇 번이라고?’ 내 것일까 네 것일까 확인하는 동작들이다.

내 번호가 맞다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 볼이 발그레해진다. 기쁨에 웃음소리도 올라오지만 우아함을 잃지 말아야 하므로 꾹꾹 누르면서 가벼운 스텝을 밟으며 빠르게 앞으로 걸어 나간다. 그리고는 긴 통화를 이어나간다. 뒤에 팔짱을 낀 채 발을 살짝 튕기며 기다리는 사람이 있지만 아랑곳하지 않는다. 선택받은 자의 특권인 것이다.


반면, 선택받지 못한 사람은 티 내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검은 구름이 얼굴에 스며든다. 옆에 친구가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조잘조잘 이야기를 건네지만, 무슨 말인지 귀에 하나도 안 들어온다. ‘내 번호인 걸 알고 전화를 안 하는 건가?’, ‘바쁜가?’, ‘삐삐를 안 가지고 나왔나?’, ‘공중전화 찾기 어려운가?’, ‘집이 아닌가?’ 등등 여러 생각이 머릿속을 헤집고 다녀 어지러울 뿐이다. 한참 뒤 던지는 한마디는 선택받은 자에 대한 질책만 담겨 있다. ‘혼자 전화 전세 냈어? 다른 사람 생각도 해줘야지. 전화하는데 계속 통화 중이면 어떻게 하라고. 못. 됐. 어.” 그냥 미워지는 것이다.


그렇지만 10분을 더 기다려도, 20분을 더 기다려도 내 번호를 부르지 않는다. ‘에이 됐다.’하고 탈탈 털어버린 후, 친구에게 ‘글렀다. 가자' 하며 일어나 카페 문을 연다. 그순간 ‘XXXX 호출하신 분~’하고 부르는 소리가 귀에 내리꽂힌다.


‘내 번호 맞지?’

친구의 대답은 듣지도 않고 웃음이 귀에 걸린 채 세찬 걸음으로 카운터로 뛰어간다. ‘저요저요'를 크게 외치며. 자신의 것이 틀림없다는 확신의 소리다. 멀리서 친구가 하는 이야기가 들린다.

‘거봐~ 무슨 일 있었던 거라니깐. 기다리니까 오잖아’


그래, 친구의 말이 다 맞다. 그것도 기쁨이 배가 되어 온다.

삐삐의 미학은 기다림으로 사람 간의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발은 동동 거리고 머릿속은 터질 것 같아도, 마음 졸이며 기다리는 그 순간이 아름답다. 이제 우리는 더이상 기다리려고 하지 않는다. 24시간 언제 어디서나 연결되어 사는 삶은 무엇인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자마자 샛별 배송처럼 채워진다. 어쩌면 바로 해결되는 것에 익숙해져 조급함이 더 난무한 것은 아닐까 싶다. 오늘은 5G, LTE가 아닌 그 옛날 카페에서 기다렸던 삐삐를 마음속에 가지고 하루를 보내고 싶어진다.


더 나은 다음의 삶을 위해 Truly Yours

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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