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순간] 공강의 추억
- 라라레터
- 2022년 3월 15일
- 2분 분량
아, 그 때는 정말 죽치고 쉬었다. 아무런 부담 없이, 뭘 해야 한다는 조바심 없는 진정 ‘비어 있는’ 시간이었다. 가능한 한 ‘공강’시간을 길게 가지기 위해 주도 면밀하게 수업 시간표를 짰다. 그래야만 그 시간에 노래방을 다녀올 수도 있고, 잔디밭에서 술 한잔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새롭게 만난 문물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 문물을 누릴 자유가 드디어 생겼는데 확실히 해야지.

<photo by Sarandy Westfall at unsplash.com>
과방에서 죽 때리며, 직업소개소도 아니고 말이야, 죽이 맞는 누군가 와서 날 뽑아 가기를 멍 때리며 기다렸던, 아무 것에도 오염되지 않았던 그 시간이 몹시도 그립다. 지금 다시 보면 오그라들 온갖 고민과 번뇌를 ‘날적이’에 익명으로 쏟아놓기도 했지. 사실, 이 때야 비로소 나의 느낌과 감정을 들여다 보기 시작한 글을 쓰기 시작하였던 것 같다. ‘날적이’를 읽는 모든 과 사람들을 상대로 어떤 정체성을 가지고 소통을 할까 고민을 시작했다는 의미를 가진다.
중년이 된 지금의 나에게 ‘공강’이란 시간이 허락될 때가 올까? 20대 초반의 공강의 성격은, 시험기간이 아니라면, 놀 거리를 사냥하는 시간이었다. 이 때의 놀이는 그야말로 자유롭게 노는 시간이었다. 만나는 사람들과의 관계에 흠뻑 빠져 너무 신나기도, 때론 힘들어 허우적거리기도 하면서 대화법이나 대처법을 터득해가는 시간이었다.
지금의 우리는, 우연적인 사건들에 자신을 맡기기엔 이미 너무 많은 것을 불안해하고, 그렇기에 다음을 늘 준비하지 않을 수 없는 단계에 있다. 그래서 우리의 공강은 아마도 책임에서 잠시 벗어나 애써 나 자신에게 집중하며 리프레시하는 시간 정도로 이해될 수 있을 듯 하다. 이렇게밖에 생각될 수 없음이 다소 씁쓸하긴 하다.
지금 돌아보면 어쩜 그리 시간을 허송했는가 싶기도 하지만, 그 때만큼 본능에 충실하며 나답게 놀 수 있는 시간은 앞으로는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너무 소중했던 추억이다.
by 은영

#팟캐스트 ‘아카라카언니들’*의 허가를 받고, 그 열 세 번째 에피소드 내용의 몇 가지의 포인트를 가져와 작성하였습니다. *팟캐스트 ‘아카라카언니들’은 저 은영과 학교 후배 ‘심은아’ (별명 ^^)가 90년대 가장 빛났던 우리와 우리가 누렸던 문화를 다시 살펴보며 에너지를 얻고 지금의 우리를 응원하는 프로그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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