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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거리] 핑크, 블루

  • 작성자 사진: 라라레터
    라라레터
  • 2022년 5월 19일
  • 5분 분량

최종 수정일: 2022년 6월 8일


#들어가며: 핑크와 블루는 온전히 자신의 색이 될 수 없다?


아들과 딸이 그림 놀이를 하면서 색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린다.


아들: 야, 여자가 왜 그런 색을 쓰냐?

딸: .....

아들: 그건 남자들이 많이 쓰는 색이거든?

딸: .....


가만히 듣고만 있을 수 없어 아이들 이야기에 끼어든다.


‘그건 여자와 남자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취향이야. 파란색을 좋아할 수도 있고, 검은색을 좋아할 수도 있고, 갈색을 좋아할 수도 있어. 여자 색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야. 동생의 취향을 존중해주면 좋겠어.’


이런 문제가 종종 집에서 일어난다. 밥을 먹다가도, 옷차림새를 보다가도, 놀다가도, 머리를 매만지다가도 생각지도 않게 젠더 편향된 단어가 아이들 입에서 툭툭 튀어나온다. 그때마다 이야기는 해주지만 듣는 둥 마는 둥 할 때도 있고, 학교에서 그리 배웠다는 식의 이야기도 가끔 나온다.


그럼 나는 성 인지 감수성이 뛰어나냐 물으면 그건 아니다. 의식적으로 노력하지 않으면 무의식 세계에 자리잡혀있던 고정관념들에 놀아나기 십상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종종 아들의 우는 모습을 보면 ‘남자아이가 그게 뭐라고 그리 우니?’, ‘남자는 태어나서 세 번만 울어야 한다고 했어. 그게 언제인고 하면 .. ’ 말을 내뱉고 나서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가 알아차리지만 저지할 틈 없이 이미 말은 다다다다다 나간다. 이러니 돌아서면 후회하고 또 후회한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당연한 것일 수 있다. 가부장적 사회에서 젠더 이분법적 사고 기반 사회 시스템에 너무 오래 노출되어 살아오지 않았는가. 온몸으로 거부했던들 정상성 바탕의 사회에서 거부하면 나만 사회 부적격자가 되는 것이었다. 결국 튀지 않으려면 조신하게 순응해야 했고, 나중에 결혼해서 가정을 번듯하게 세우려면 전형적인 여성의 역할을 잘 배워야 했다. 즉 암탉이 울어 집안을 망치게 하는 중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것이 여성의 중대한 임무이므로, 그 임무를 수행하는 엄마와 이웃 여성들을 보고, 듣고, 자라면서 같은 태도를 장착해야 했던 것이다. 그러니 정신 차리지 않으면 장착된 태도가 훅훅 튀어나온다.


그러나 길들여진 결과는 처참하였다. 많은 이야기를 늘어놓지 않아도 약하게는 ‘여성의 경력단절’, ‘여성의 차별적 사회 위치’를 통해 (사람을 상품화나 가벼운 목숨 따위로 취급한 것보다는 가벼운 것이기에 약하다는 표현을 사용하였다.), 심하게는 ‘강남역 묻지마 살인사건’, ‘미투’, ‘N번방’, ‘버닝썬 게이트’를 통해 알 수 있다. 남성 우월주의 사회에서 남성이 아닌 다른 성은 그림자였고, 차별과 혐오의 대상이 되어 온 것이다. 그리고 범죄, 차별, 혐오의 수위는 자본주의 발전 속도에 비례하는 듯 깊어졌고, 포악해졌고, 짙어졌다. 일상 곳곳에 깊이 스며들어 있는 범죄, 차별, 혐오에서 우리의 자녀들도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우리 모두가 인지하고 있다. 그러니 우리는 ‘낯선 사람이 아무리 '네가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이나 장난감을 들이밀며 따라오라 해도 가면 안 된다', ‘어떤 아이이든 어른이든 성적으로 괴롭히면 상세히 부모한테 먼저 이야기해야 한다.’, ‘이상한 것들이 너무 많으니 유튜브 보면 안 된다.’ 등 하지 말아야 할 것들에 대해 인이 박이게 이야기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다고 아이의 24시간을 따라붙을 수 없으니 내 사정거리 밖에서 일어나는 일을 어찌 감당해야 하나. 그저 믿고 또 믿으며 기도하는 것만이 답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래서 젠더 교육이 중요하다.


이 모든 것이 바뀌려면 깊고 단단하게 내려앉은 뿌리를 뽑아내야한다. 그러려면 근본적인 것부터 바뀌어야 하며 이를 위한 해결책들이 보편화 되어야 한다. 그러니까 젠더에 대한 생각과 사회적 통념 또는 이즘 구조를 전환해야 하는 것이다. 너무 통상적으로 들리는가? 그러나 이것밖에는 방법이 없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젠더 교육이 중요한 것이다.


사실 제대로 작동을 안했을 뿐, 남성과 여성에 대한 편견 또는 고정관념 타파와 사회적 인식 전환 필요성을 강조하며 젠더 교육의 중요성을 이야기한 지는 오래되었다. 그러다가 위에서 언급한 '있어서는 안 될 사건들'이 일어나면서 급물살 타게 된 것은 최근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젠더 뉴트럴 육아 교육(Gender-neutral education), 나다움을 길러주는 양성평등 교육(Gender-equitable education), MZ 세대 중심의 젠더리스 문화(Gender-less culture) 등 성 인지 감수성과 인권 감수성 문화와 교육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 중이다.


성인지 및 인권 감수성 교육은 전통적인 성별 고정관념에서 벗어난 교육 방식에서 시작된다. 성역할 정체성은 영유아시기에 형성 되기에 놀이를 통한 상호작용에서 올바른 인식이 정립될 수 있도록 교육해야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예를 들어 성별화된 놀이에서 역할을 바꾸어 남자아이에게는 인형 놀이나 주방 놀이를, 여자아이에게는 운동이나 블록 놀이를, 엄마 아빠 역할을 바꾸어보는 소꿉놀이를, 고정화된 직업적 성별 변경 놀이를 하며 직업이나 사회역할에서 성별의 차이가 없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습득할 수 있게 도와주어야 한다. 학교에서도 젠더중립을 지향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일본 가시와 시의 한 시립 중학교에서는 남녀의 성별 차이를 없앤 젠더리스 교복을 도입 하였고, 영국에서도 남녀 모두 바지로 통일하는 등 보이는 것에서부터 성별 장벽을 허물고 있는 추세이다.


더불어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적 표현도 우리의 태도를 좌지우지하는 중요한 지점이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신사숙녀 여러분(ladies and gentlemen)’이라는 표현을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여겨 영국에서는 ‘안녕하세요 승객 여러분(hello, everyone)’으로 변경하였고, 네덜란드에서는 ’여행자 여러분(Dear Traveller)을 사용하기로 하였다고 한다. 캐나다의 경우, 국가인 ‘오 캐나다’ 가사에서 ‘모든 그대의 아들들(all thy sons)’이란 표현 변경 법안이 통과되어 ‘우리 모두(all of us)’로 수정 하였다고 한다.


무엇보다 책은 한 사람의 세계관을 정립하는 데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아동·청소년 문학평론가인 김지은은 대부분의 책에서의 ‘여성 어린이는 다소곳하고 희생적이며 순정적인, 때로는 날개 달린 천사처럼 묘사’되었고, ‘세계에는 다양한 어린이가 살아가고 있지만, 그 책 안에 어떤 사람은 존재하고 어떤 사람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즉 차별과 혐오의 대상인 사회적 약자는 책을 통해 정체성이 도드라지게 굳어지고, 현실의 편견이 더욱 강화되는 경우도 있거나 책 속에서조차 차별과 혐오를 감당하게 되는 것이다. (오늘의 어린이 책, p31, p33) 획일적이거나 차별이 보이는 콘텐츠는 나를 이해하고 나다움을 만드는데 장벽이 되며, 미래상으로 이야기하는 ‘공존’과 ‘공감’ 역량을 형성하는 데 일조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성별 고정관념에서 탈피하여 스스로 자아를 찾아가며 나다움을 형성하는 데 긍정적인 역할을 하는 책을 선별하여 아이에게 제공하는 일도 매우 중요하다. 필요하다면 다양성, 포용, 성 인지 감수성, 평등을 바탕으로 한 책들을 엄격하게 선정하여 소개한 '오늘나다움'에서 펴낸 ‘오늘의 어린이 책’(2021)을 참고하기를 권한다.


사실 이 모든 것은 인권과 관련된 것이다. 다시 말해 ‘나와 너를 존중하는 교육’으로 성별, 나이, 피부색, 모양새는 달라도 모든 사람의 인권은 소중하고 평등하다는 것을 어려서부터 익혀 내재화하는데 그 의의가 있다. 그래야 모두에게 평등한 기회가 보장된 사회, 자유가 보장된 사회를 만들어 갈 수 있다.


초등성평등연구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김은혜 교사는 젠더 교육은 아이 스스로 약자나 차별의 대상이 되었던 경험을 떠올리는 데서 시작해 볼 수 있다고 하였다. 이를 통해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 공감하고 ‘나쁜 말’에 대한 감각을 익힐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남자아이에게는 ‘씩씩함’, 여자아이에게는 ‘단정함’을 강요하는 사회 분위기에서 벗어나 차이와 차별이 다르다는 것을 이해시킬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아이가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이야기하는 기회를 만들어 주는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타인의 기대나 사회적 잣대에 자신을 맞추기보다 자신의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하도록 도와주고 경청하기만 하면 자기감정에 충실해지고, 이는 타인의 감정이나 기분을 존중하는 관계로 이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마치며: 부모도 함께 배워나가야 한다.


딸아이가 미술학원을 처음 간 날, 가족을 그렸다. 엄마, 아빠, 오빠, 자신의 머리가 똑같이 길었다. 오빠는 파마가 가능할 정도의 긴 머리라 과장되어 그렸나보다 했지만, 아빠의 머리는 왜 긴지 이해가 안 되었다. 학원 에서 그림을 보자마자 아이에게 아빠 머리는 왜 길게 그렸는지 물어보았다. 돌아온 대답은 ‘아빠가 늦게 들어오니 내가 잘 기억을 못했나?’였다. 사실 아빠가 퇴근하고 돌아오는 시간이 늦긴 하지만 기억을 못 할 정도로 시간을 함께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나의 질문에는 틀렸다는 뉘앙스가 담겨 있었는지 모르겠다. 아니면 다른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틀림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 수도 있다. 무엇이 되었건 아이는 편견과 고정 관념 틀에서 에둘러 말했던 것은 아닌가 싶다.


우리 아이가 차별 당하지 않는 사회를 바란다면 아이가 자신다운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편견과 고정관념의 틀이 없어야 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부모도 그 틀을 없애는데 예민하고 민감하게 조력해주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부모 또한 오랜 시간 동안 제대로 배우고 익힐 기회가 없었기에 아이들과 함께 학습해나간다면 이다음은 조금은 더 나은 세상으로 갈 수 있지 않을까 바라 본다.



더 나은 다음의 삶을 위해 Truly Yours, 우정


참고문헌:

다음북클럽, <오늘의 어린이책>, 오늘나다움(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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