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거리] 친밀하게 지켜보기
- 라라레터
- 2022년 4월 6일
- 4분 분량
최종 수정일: 2022년 5월 6일
'엄마, 오늘 애들이 나한테 공을 한 번도 안 줬어.
내가 골을 넣을 수 있었던 찬스였는데, 나한테 왜 패스를 안 해주는 거야?’
저녁 7시, 현관문이 열리면서 아이의 짜증과 화가 뒤섞인 거친 소리가 집안에 쩌렁쩌렁 울린다.
보통은 ‘다녀왔습니다’로 시작하는데, 다급함이 느껴지는 ‘엄마’ 소리와 씩씩거리며 뿜어져 나오는 말에서 위기감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이야기는 이렇다.
아들은 오랜 시간 동안 축구 선수의 꿈을 가지고 있었다. 초등학교 5학년이 되어서야 집에서 공식적으로 그 꿈을 받아주었고, 선수를 양성하는 축구 클럽에 들어가게 되었다. 합류한 지 이틀째 되던 날 연습경기가 있었다. 아들 스스로는 자신감 넘쳤을테고 이 기회에 자신의 존재감을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기존 친구들은 이미 2, 3년 동안 함께 합을 맞추며 연습해왔던 터라, 동네 축구만 하다가 나타난 아들과 손발이 맞지 않았을 것이고, 아들의 부족함이나 어설픔도 보였을 것이다. 무엇보다 공을 줄만큼 신뢰가 형성이 안되어 있지 않은가!
그러거나 말거나 아들은 오랫동안 고대하던 축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했기 때문에 매일 날아가는 기분에, 의욕은 하늘 높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그저 선수가 되는 연습 반에 들어간 것뿐인데, 벌써 축구선수가 된 것 같은 분위기랄까. 하필 이럴 때 공 찰 기회를 전혀 가지지 못했다니. 분노의 울컥거림을 꾹꾹 누르면서 집까지 온 것만으로도 용한 것이었다.
훈련 시간에 겪었던 일이 쉽게 가라앉지 않는지, 아들은 시간이 지나도 좀처럼 차분해지지 않는다. 씩씩거리며 이리 갔다 저리 갔다를 반복하다가 동생을 괜히 건드려 눈물을 빼고야 만다. 뭐라고 야단칠려 하니 와서는 안아달라고 한다. 알 수 없는 안쓰러움이 올라와 꼭 안아주는데, 유후훗.. 땀에 젖은 유니폼에서 올라오는 비린내도 아닌 야리꾸리한 이 냄새는 무엇인지. 순간 밀쳐내며 위로의 말이 ‘빨리 씻어!’라는 말로 바뀐다.

[Photo by Christian Erfurt on Unsplash]
아들이 씻는 동안 월계수 잎, 커피 가루, 그리고 된장을 풀어 삶고 있던 수육이 야들야들하게 잘 익어간다. 잘익은 수육을 식탁에 올려놓고서야 아이와 이야기할 시간을 갖는다. 이야기라기보다는 시시콜콜한 질문의 폭격이 시작된 것이라고 표현하는게 더 맞을 것 같다.
‘애들이 공을 안 줬어?’
‘어제도 오늘도 계속 그랬어?’
‘새로운 애들이랑 지내는 거 어려워? 애들하고 잘 안 맞는 것 같아?’
‘설마 애들하고 말도 안 하고 혼자만 덩그러니 있니?’
엄마의 질문 따위는 공중으로 쳐내버리고, 아이는 시종일관 시무룩한 표정을 지은 채 ‘몰라'라는 대답만 할 뿐이다. 고기를 한 점 집어들어 입에 가져가보지만 맛을 느낄리 없고, 힘이 없는 눈동자는 저 먼발치 어딘가를 의미없이 응시하고 있다. 그 모습에서 외로움이 고스란히 전해지며, '이 아이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면 밥도 제대로 못먹고 말도 제대로 못 할까' 과잉해석하게 된다.
실은 내가 그렇다. 어떤 무리에 들어가 내 자리를 만들어가는 것을 어려워한다. 친한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에서는 더욱 그렇다. 무엇을 해도 나의 모습 같지 않고, 애써 움직여보는 손동작도 어색하고, 인위적인 웃음으로 얼굴 근육은 굳어져 욱신욱신 아프기까지 한다.
내가 이렇다 보니 아이에게서 보이는 제스처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 마음은 어떨지 알 것 같다. 마치 내가 그 자리에 있었던 것 처럼 마음이 저릿저릿하다. 할 수만 있다면 그 어려운 감정을 내가 다 가져가고 싶다. 그러면서 그런 외롭고도 쓸쓸한 감정을 지금부터 느낄 필요가 있을까 하는 마음이 스며든다.
그러나 곧 정색하고 아이의 사회생활이 찐으로 시작되었으니 잘해나갈 수 있게 조력해야지 싶어 ‘나는 엄마다‘ 모드로 돌변한다. 그렇다고 할 수 있는 일은 주저리주저리 지루한 연설을 늘어놓는 것뿐이지만 말이다.
‘있잖아. 앞으로 살면서 그런 일이 수시로 온다. 그때마다 이겨내야 해. 내가 편하고, 즐겁고, 희희낙락할 수 있는 곳에서만 지내면 사람이 발전이 없어. 어려움을 이겨내야 비로소 성장이 되는 거야. 지나 봐라, 아무것도 아닐 걸?‘
‘.......’
대꾸가 없다. 그런 아들이 답답해 이겨내야 한다고 늘어놓은 고루한 연설에 반하는 한마디를 더한다.
‘그렇게 힘들고 못마땅해? 집 근처에도 축구클럽 있어. 동네 친구들 다니는데 네가 말한 그곳, 그래 거기로 옮기자. 세상에 축구 훈련 하는 데가 하나뿐이겠니?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마. 엄마한테 말만 해. 바로 옮겨줄게.’
묵묵부답이었던 아들이 결국 한마디 터트린다.
‘아니야 엄마!!. 아니라고.’
짜증과 답답함의 외침이다. 왜 나한테 짜증인가 속으로 부글부글하였지만 참고 말을 이어간다.
‘그래, 그럼 한번 이겨 내볼래? 해보는데 정 안 되겠다 싶으면 말해. 그 까지 것 옮기면 돼.’
그리고는 대화가 종결된다.
돌아보니 어른이라고 멋진 솔루션을 주려고 그랬나 싶다. 내가 크면서 겪은 아픔, 슬픔 또는 실수들을 할수만 있다면 아이는 겪게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늘 있다. 그래서 문제를 빠르게 해결해주면 굳이 안겪어도 될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정작 아이가 힘든 감정 때문에 짜증을 내면 그 감정은 받아주지도 못하면서, 아이 마음은 부정적인 감정으로 얼룩지게 하고 싶지 않았다. 참 모순적인 모순이 아닐 수 없다. 이 상황에서
필요한 아름다운 거리는 무엇이었을까.
*
사회성은 타인과 편안하게 관계를 맺는 능력이다. 그리고 생각지도 못하게 관계에 문제가 생길 때 잘 해결하는 능력이기도 하다.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다양한 사람들과 조화를 이루며 적응적인 삶을 살게 된다.
탁월한 사회성은 부모가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고 수용하는데서 시작된다고 오은영 박사는 말한다. 원하는 것을 다 들어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알아차리고 이해해주는 것을 말한다. 그러니까 나의 경우, 질문 폭격 대신 ‘친구들이 공을 안 줘서 화가 많이 났구나. 친구들이 너를 외면하는 것 같아 외로웠겠구나.’로 시작했어야 했던 것이다. 자기 마음을 이해 받은 경험을 많이 하면 할수록 아이와 부모는 감정적으로 더욱 단단하게 연결되고, 마음이 단단해지면 누구 앞에서나 편안한 사람이 된다고 한다.
내가 생존할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고 느끼는 감정인 자존감은 사회성에 꼭 필요한 요소이다. 자존감이 잘 형성되어야 내면의 힘이 세지면서 타인의 마음을 보편적으로 이해하고 공감하는 능력이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말하기도 전에 부모가 모든 것을 알아서 다 해결해주면 스스로 말할 필요가 없어지고, 숨어버린 말 뒤로 자신도 사라지게 된다. 나를 잃어버리게 되면 결국 다른 사람의 존재의 의미도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사회적 관계 맺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다른 사람의 감정을 알아차리는 것이며, 어려서부터 '화'나 '슬픔'같은 감정도 표현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Photo by Charlein Gracia on Unsplash]
이향숙 박사는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옥시토신 호르몬이 중요하다고 하였다. 이 호르몬은 누군가 나를 따뜻하게 안아주고, 눈을 맞춰주고, 스킨십을 해줄 때 분비된다. 실제로 포옹하는 수와 옥시토신의 양은 정비례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이것이 우리가 아이를 따뜻하게 안고 손을 잡으며 신뢰와 지지를 표현해야하는 이유이다.
오은영 박사의 이야기처럼 양육의 궁극적인 목표는 아이의 자립과 독립이다. 즉, 아이 스스로 자신을 돕도록 부모가 돕는 것이다. 그렇기에 추궁하는 듯한 질문과 잔소리같은 나열식 설명보다는 아이의 감정을 받아주고 이해하며, 스스로 자신을 돕도록 친밀한 거리에서 함께 서있어 주는 것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더 나은 다음의 삶을 위해 Truly Yours, 우정
레퍼런스
오은영 (2022) https://youtu.be/o9gaQf_JfvE
오은영 (2021,12), 마음을 표현하는 법도 가르쳐야 한다 「월간 채널 예스」
이향숙, 김경은, 서보라 (2020), 「초등 사회성 수업」,메이트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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