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씽라라] 팀 스포츠를 통한 협력과 소통의 경험, 여성에게도 필요해요.
- 라라레터
- 2022년 6월 9일
- 15분 분량
[위밋업스포츠 신혜미・양수안나 님 편]
나는 운동의 재미를 모른다. 아니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운동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바로 숨이 차오르는 것 같고, 극기 훈련 같은 고통을 이겨내야 할 것 같은 행위만 연상되기 때문이다. 왜 그럴까 생각해보니 초등학교 시절 잠시 학교 육상팀에 있었을 때 새벽에 운동장 몇 바퀴를 뛰고 수업 받으러 가는 것이 고통스러웠다. 중학교 특별활동 시간에 참여했던 테니스부에서는 줄 세운 후 포즈 취하는 것과 손목 스냅만 연습했다. 성인이 되어 테니스를 다시 배우러 갔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지하 센터 내 창문 없이 사방이 벽으로 둘러 싼 어느 룸에 배정되어 자세 교정으로 몇 주를 보냈다. 공은 자세가 잡힌 후에 치는 것이라고 했다. 재미가 없었다. 지루하고 답답했다. 나는 자유롭게 내 몸을 움직이면서 상대와 겨루고 싶었다. 실패하고 잘못되었다고 하더라도 몸을 던져 스스로 익히고 싶었다. 내가 선수가 될 것도 아닌데, 뭔 놈의 기본을 이리 오래 익혀야 하는 것인지. 인내심과 지구력 테스트도 아니고 뭐가 이리도 까탈스러운가 싶었다. 운동의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구멍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또 선생님이 하라는 대로만 따라가다 보니 운동은 여자가 하기에는 넘사벽이라는 생각도 들었다(내가 만난 운동 선생님은 모두 남자였기에 그랬을 수도 있다). 그렇게 운동은 어려운 것이라는 명제가 내 안에서 성립되었던 것 같다. 그 후로 지금까지 운동과 나는 인연을 만들어가지 못했다.
얼마 전 지인을 통해 이야기를 들었다.
‘위밋업스포츠 대표님들을 만났는데, 스포츠로 여성도 연대가 가능하다고 하더라’
알 수 없는 전율과 짜릿함을 주었다. 바로 만나고 싶었다. 그 어려운 것으로 여성의 연대를 어떻게 끌어낼 수 있다는 것인지 물어보고 싶었다. 이것이 가능하다면 너무 멋있는 언니들이다 싶었다.
그리고 만남이 성사되었다. 만나러 가기 전 날까지도 어릴 적 연인과 데이트 하러 가는 것처럼 가슴이 콩닥콩닥, 두근두근 거렸다. 위밋업스포츠는 나를 또 어떤 모르는 세계로 데려갈까 기대하면서 말이다.

Q: 안녕하세요. 두 분 너무 만나 뵙고 싶었어요. 위밋업스포츠 덕에 여성을 위한 스포츠 플랫폼이 있다는 것을 이번에 알게 되었네요. 대표님 두 분 모두 전직 축구 선수였다고요. 제가 자랄 때는 여성이 축구를 한다는 것. 그것도 선수가 된다는 것은 상상도 못 해 봤어요. 주위에서 본 적도, 들어 본 적도 없었어요. 더 정확하게는 사회가 가려놓아서 그랬던 것 같고요. 그래서 대표님 두 분이 축구를 어떻게 알고 배우게 되었는지가 무척 궁금해요.
신혜미: 아시안 게임에서 여자 축구가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면서 각 도와 시에서 팀이 생기기 시작했었는데요. (축구는 1951년부터 아시안 게임의 공식 종목으로 채택되었으며, 여자 축구는 1990년부터 아시안 게임 축구의 세부 종목으로 채택되었다.) 그때 제가 다니던 학교에 육상부가 해체되고 축구부가 생겼어요. 그래서 저는 아주 우연한 계기로 테스트를 받게 되었는데, 바로 발탁된 케이스예요.
양수안나: 저희 집은 아버님이 워낙 운동을 좋아했고, 직접 하시기도 했기 때문에 ‘여자가 어찌 운동을?!’ 이라는 분위기는 아니었어요. 오히려 하고 싶은 것을 맘껏 하라며 박수 쳐주는 분위기였죠.
사실 저도 여자축구가 있는지는 몰랐어요. 축구 말고 다른 운동을 하고 있었죠. 어느 날 TV에 위례상고라고 지금은 동산고등학교 여자 축구팀이 나오더라고요. 축구 경기에서 우승을 했어요. 그때 ‘어랏, 여자 축구가 진짜 있네, 해볼까?’ 하면서 시작했어요. 그게 고등학교 때이니 늦게 시작한 편이었죠. 그래도 아빠가 적극적으로 알아봐 주시고, 다니던 태권도 관장님께서 테스트까지 볼 수 있게 연결해주는 등 주변에서 적극적으로 밀어줘서 순조롭게 시작할 수 있었어요.
그런데 정작 사회나 주변의 시선은 ‘여자가 축구를 한다고?’ 하며 놀라거나 의아해하는 반응이었어요. 사실 이해도 돼요. 대부분의 사람이 여자 축구가 있는지 전혀 몰랐으니까요. 아마 2000년도 초반까지도 생경했을 거에요.
Q: 어린 시절에 축구를 하면서 이걸 해야 해, 말아야 해 하며 흔들렸다거나, 다른 것을 해봐야겠다고 생각 해본 적도 있었나요?
신혜미:
매번 흔들리지 않았을까(웃음).힘들 때마다 누구누구가 그만두고, 도망가고, 나도 아마 다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계속하기는 했죠.
양수안나:
처음 축구팀에 48명이 있었어요. 그런데 거의 그만두었어요. 대학이나 실업 팀으로 다 진학 되는 것은 아니라서 스카우트가 안되면 자연스럽게 그만두는 친구, 원치 않은 부상으로 그만두는 친구, 문화 코드가 맞지 않아서 그만두는 친구 등 여러 사례가 있었어요.
특히 제가 운동하던 당시에는 정신 차리게 한다면서, 선생님 또는 코치님한테 맞는 것이 당연한 문화였어요. 정신력이 약하다는 말로 저희를 세뇌시키고, 안 맞으려면 열심히 하는 것이 정답이라고 생각했던 시대였죠. 다행히 저희 고등학교 팀은 때리는 선생님은 없었어요. 그래서 경험하지 않았던 우리 팀 애들 모두가 대학교 가서 도망갔던 거죠. 때리고 맞는 문화에 적응하지 못해서요.
신혜미:
그런데 저는 그런 이유로 그만두고 싶지 않았어요. 나 스스로 정당화할 수 없었죠. 그 시절에 진짜 많이 맞았거든요. 새벽마다 맞고, 이유 없이 맞고 그랬죠. 그냥 이것에 지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맞는 것을 이유로 그만두지는 않겠다고 스스로 다짐했죠. 그때 코치님이 늘 했던 말이 ‘나중에 크면 때리는 이유를 다 이해하게 될 거야'라고 했는데, 20살이 되어도 30살이 되어도 이해를 못하겠더라고요. 지금도 아무리 노력해도 이해 못하겠어요. 그냥 때리는 행위에 대해 변명한 것뿐이라고 생각해요.
Q: 진짜 저희 어렸을 때에는 선생님께 ‘맞는 문화(폭력문화)’가 너무 당연했어요. 그런 고충 속에서도 축구를 어떻게 계속해서 지속 하셨었나요?
양수안나:
솔직히 말하면 저는 운동신경만큼은 타고났어요. 여러 운동을 해봐도 습득력이 빨랐죠. 너무 열심히 하지 않아도 눈에 띄게 잘하는 사람이 바로 저였어요(웃음). 그래서 대학도 잘 갔고, 실업팀 진출도 수월하게 했죠. 그러다 보니 축구를 그냥 즐기는 정도로만 생각하지 않았나 싶어요. 저는 운동을 죽어라 하는 것보다는 운동할 때는 운동, 끝나고 나서는 잊고 재밌게 놀아야 하는 성향이었어요. 항상 신나있었던 것 같고, 놀 때도 진심으로 놀았어요. 그러다 나이 들어가면서 깨달은 바가 많아서 열심히 하지 않았던 제가 아쉽다는 생각을 해요. 그래서 후배들에게 해줄 이야기가 많아요.
신혜미:
우선 운동신경을 말하면, 운동을 하지 않는 분 보다는 아주 높은 수준이었지만 운동선수들 틈에선 중간 정도였어요. 그래서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그 이상을 뛰어넘지 못하고 쳐지겠다는 것을 빨리 깨달았어요. 그러다보니 운동하면서 이다음의 삶에 대한 고민을 항상 했어요. 그 주체는 항상 저였고요. 그러니까 나 스스로 만족하면 누가 뭐라 해도 흔들리지 않았던거에요. 남에게 보여주는 인생이 아니고 내 삶이니깐 이런 고민을 하면서 저에 대해 잘 알려고 집중했어요.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일 그리고 진로에 대해 남들보다 빨리하기 시작했죠. 축구하면서 스터디 동아리도 찾아보고, 내가 어떤 것을 갖춰야 하는지 생각하면서 그 자격을 갖추기 위해 다방면으로 고민도 하면서 배워나갔어요.

[위밋업스포츠 양수안나 대표(좌)와 신혜미 대표(우)]
Q: 자신에게 집중해서 나에 대해 잘 알고 앞을 대비해서 나아갔다니요. 어린 시절의 저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네요. 축구로 대학교까지 가셨으니 이후 어떤 경력을 이어오셨는지 이야기해주시겠어요?
양수안나:
저는 대학 졸업 후 실업팀에 합류하여 계속 운동을 이어갔는데, 그 과정에서 우여곡절이 조금 있었죠. 대학교 3학년 때 팀이 갑자기 해체되었어요. 이후 대학 생활을 자유롭게 즐기다가 졸업하려고 했는데 (웃음) 4학년 때 대학축구협회에서 지원받게 되어 축구를 다시 해야 했죠. 사실 운동을 1년 쉬면 실력 차이가 엄청나거든요. 팀 친구들 모두 안 되겠다 싶어 다 함께 그만두겠다고 했는데, 그러려면 받은 장학금을 다 토해내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열심히 다시 해보겠습니다’ 했죠. (웃음)
실업팀가서도 3년 차에 팀이 해체 되었어요. 그 때 좋은 선수들이 많았는데 아쉽게도 모두 다 그만두어야했어요. 그러면서 원하지 않은 은퇴를 하게 되었죠. 두번이나 팀이 해체되고,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은퇴까지 하게 되니 처음으로 축구가 싫어졌어요. 그래서 수개월간 방황하기도 했어요.
그래도 내가 잘하는 것은 축구밖에 없더라고요. 내가 쌓아온 이력을 인정받을 수 있는 길이기도 했고요. 그다음부터 축구지도자의 길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어요.
신혜미:
저는 실업팀으로 가지 않고 석사를 마쳤어요. 이후 호주 유학도 하러 갔고요. 새로운 길을 도전하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에 다양한 경험을 많이 쌓았어요. 예를 들면 호주에서 접시 닦기, 닭 힘줄 빼기, 새우 똥 빼기 그런 것들을 했죠. (웃음)
양수안나:
엇, 저도 수개월간 방황할 때 일식집에서 아르바이트했었어요(웃음). 사장님이 엄청나게 좋아했어요. 운동한 사람이니 빠릿빠릿하지, 자전거랑 오토바이 탈 줄 알지, 차도 운전하지. 뭐 웬만한 남자보다 일을 더 잘해서 너무 좋아하셨죠(웃음).
신혜미:
그렇지, 우리가 일을 너무 잘한다니까요(웃음). 호주는 보통 접시닦이 같은 주방일은 남자에게 맡겨요. 그런데 어쩌다 제가 하게 되었는데, 너무 잘한 거죠. 그래서 계속하게 되었는데요. 알고 보니 남자 시급보다 낮은 비용으로 저를 쓰고 있는 것이었어요. 제가 불의를 못 참는 성격이다 보니 뭐라 따졌죠. 3개월 뒤에 올려주겠다고 해서 기다렸는데, 시간이 지나도 올려 줄 생각을 안 하는 거에요. 그래서 또 항의했더니 짤렸어요(웃음). 그래도 불이익 당한 것을 상대방도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 이런 식으로 하면 안 된다고 이야기는 하고 나왔어요 (웃음). 나와서는 더 좋은 기회가 생겨서 기존보다 4불이나 더 주는 데리야키 스시집에서 일하게 되었지만 말이에요 (웃음). 그렇게 아르바이트도 하면서 교회에서 재능 기부로 축구를 가르치기도 했어요.
한국에 와서는 스포츠마케팅 회사에서 잠시 일도 도와주는 등 다양하게 일을 하다가 대학원 때 만난 남자친구와 결혼했어요. 이후 아이가 생기면서 일을 그만두고 긴 경력단절의 시간을 보냈죠. 남편은 대학원 졸업하고 뭔가 잘나가는 것처럼 보였는데, 왜 나만 이런가싶어 남편이 조금 꼴 보기 싫었을 때이기도 해요(웃음).
Q: 그럼요 그럼요. 엄마가 되는 과정에서 누구나 다 느꼈을 법한 감정이지요. 그럼, 대표님은 육아 때문에 일을 그만두고 계속 집에만 있었던 거에요?
신혜미:
아니요. 정식적인 일은 안 했어도 무엇인가 하려고 계속 시도했어요. 필리핀에 가서 무엇인가 해보려고 하기도 했고, 미국에 가서도 끊임없이 보고 배웠죠. 그렇지만 아이를 돌보는 상황에서 수월하게 갈 수 없었어요. 특히 미국에 있을 때는 둘째까지 생기는 바람에 아이들 돌보는 것에 집중 하자며 (포기는 아니고) 손을 잠시 놓게 되었죠. 그래도 이때 미국에서 축구 지도자 자격증도 따고, 미국에서 운동 티칭 프로그램들도 계속 보기도 했죠. 위밋업스포츠를 하기 위해 그랬었나 봐요 (웃음).
그러다가 둘째 낳으러 한국에 왔는데 이대로 안 되겠다 싶어 박사 공부하는 것을 알아보았어요. 한국에서도 할 수 있었지만, 중국에서 국비 지원으로 공부가 가능하게 되어서 아이 둘을 데리고 중국으로 갔어요. 아시죠? 수업 듣다가 젖이 불으면 화장실 가서 해결해야 했거나, 집에 달려가서 아이에게 젖을 먹였어요. 저는 밥 먹을 시간도 없어서 진짜 대충 먹고 그랬지만요.
Q: 와, 어떤 상황이었을지 상상이 돼요. 그 힘든 상황에도 계속 공부를 이어갔던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신혜미:
절실했던 거죠. 지금 다시 하라고 하면 못해요. 지금 말로 하니깐 힘들었겠다고 하지만, 그때는 아무 생각이 없었어요. 그냥 해야 하니깐 했어요.
Q: 아무리 해야 하는 것이라 해도 누가 등 떠민 것도 아닌데, 무너질 수 있을 것 같거든요. 그래도 이겨내신 것에 감탄스러워요.
신혜미:
하고 싶은 마음, 해야 한다는 생각이 더 컸던 것 같아요. 내가 하고 싶으면 해내야 했거든요.
양수안나:
운동선수들의 강점 중 하나에요. 보통 힘들면 중간에 포기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런데 운동을 하게 되면 한계점을 넘기는 연습이 계속돼요. 이 경험이 쌓이면 못 할 것이 없어요. 물론 그 훈련이 고통스러우니까 진절머리 난다고 싫어하는 사람도 있긴 해요 (웃음).
그래서 저희는 아이들 놀이 수업할 때도 한계점 넘기는 연습을 계속하게 독려해요. 고통스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실패하면 ‘실패해도 괜찮아. 잘했어. 또 하면 돼. 언젠가는 돼. 잘했어. 잘했어.’ 이렇게 격려하고 칭찬을 계속해요. 저희는 그렇게 자라지 못했지만요. 그러면 아이들은 바로 옷 털고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나요. 주눅 들지 않고 바로 하이파이브 하고요.
Q: 너무 중요한 것 같아요. 칭찬과 격려로 한 발 한 발 내딛게 하는 것. 저와 같은 어른에게도 해주고 싶은 말이에요. 실패해도 괜찮아, 지금까지 잘해왔어. 다음에 더 잘하자고. 그런데 여기서 조금 더 궁금해지는데요. 신혜미 대표님은 아이 둘을 데리고 중국에 가서 어렵게 박사까지 했는데 한국에 와서 왜 일을 못한 것일까요?
신혜미:
제가 느끼기에 남편이 일하고 있는데 너까지 사회에 나올 필요 있어? 이런 분위기였어요. 제 모교로 가보려고도 했는데요. 거기에는 후배가 강의하고 있어서 그건 또 상도에 어긋나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학교 근처는 쳐다도 안 봤죠.
Q: 특히 여자축구 분야로 교단에 서려면 선택의 폭이 넓지는 않았겠어요.
신혜미:
네. 그래서 방과 후 수업부터 갔어요. 이때 양수안나 대표에게 수업계획표 쓰는 것부터 해서 티칭할 때 필요한 것들을 다 물어봤어요. 그리고는 학교마다 가서 이력서를 냈지만 결국에는 잘 안되었어요. 이미 다 시스템적으로 결정된 게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하나씩 하나씩 해나갔죠.
Q: 그래서 양수안나 대표님과 위밋업스포츠를 창업하게 되었나요? 창업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신혜미:
위밋업스포츠를 하기 전에 제가 잠시 장애인축구협회 사무국장도 했었는데요. 이때 장애인 스포츠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어요. 행정적 문제점 내지는 다양한 사람들이 겪는 어려움의 실체도 느끼게 되었고요. 그때쯤이었을 거에요. 양수안나 대표와 이런 어려움의 실체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아무도 우리가 원하는 것을 해주지 않네?’ 하는 문제의식을 느끼게 되었고, ‘없다면 우리가 할까?’ 하면서 시작되었어요.
양수안나:
기본적으로는 여성들이 너무 기회가 없다는 문제의식을 우리 둘 다 가지고 있는 것에서 출발했어요. 능력이 없는 것도 아닌데 기회가 없다는 것을 계속 느꼈던 거죠. 거기에 신혜미 대표의 방점은 ‘경력단절'이었고, 저는 ‘여성'이었어요. 그래서 우리 둘이 이야기하다가,
‘없어? 그럼 우리가 하자!’
그리고는 우리가 대회를 열어버렸어요. 사업하자 이런 것이 아니라 ‘이것도 없네', ‘저것도 없네', ‘이거 필요하지 않아?’ 이러면서 시작한 것이 ‘언니네 축구대회'이고 이후 다른 클래스도 만들면서 위밋업스포츠가 되었어요. 이렇게 바뀌면서 사업적으로 바라보게 된 계기가 되었고, 또 ‘양성평등상’을 수상하면서 책임감이 한층 올라갔죠. 이후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답니다 (웃음).
신혜미:
그리고 저희가 그런 이야기를 많이 해요. 우리의 지난 경험이 위밋업스포츠를 위해 존재하는 것 같다고요. 서로가 무엇인가 이야기하다 보면 저희 둘 중에서 거치지 않은 것이 없어요. 각자 경험 한 것이 상호보완적이 되더라고요. 엄청나게 큰 커리어는 없지만, 위밋업스포츠를 꾸려가는 전반에 걸쳐 다 경험한 거예요.
양수안나:
그러니까요. 일을 하다 보면 신 대표가 경험 안 한 것은 제가 했고, 제가 경험 못한 것은 신 대표가 했어요.
Q: 문제의식에서 출발해서, 필요한 것이지만 없어서 만들어냈다는 말에 울림이 있어요.
양수안나:
저는 일찍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질 수 있게 공부를 했다면 어쩌면 좀 더 일찍 위밋업스포츠를 하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저희는 운동 기계로 자란 거지, 학생으로 자라지 못했다고 생각하거든요. 수업을 듣고 싶어도 들을 수 없었죠.
이런 적이 있었어요. 축구를 가르치러 갔는데 배우러 왔다는 친구들이 치마, 청바지, 숏바지 각기 다른 옷을 입고 슬리퍼를 질질 끌고 어슬렁어슬렁 들어오더니, 준비운동도 없고 배우려는 의욕도 없는 거에요. 보통은 운동복도 갖추고 10분 전부터 와서 준비하고 있어야 하거든요. 그게 저의 상식인데, 이건 기본이 안 되어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나를 무시하는 것 같은 생각까지로 확장되더라고요. 에잇, 못 가르치겠다 싶어 그냥 가벼운 게임만 하고 집에 가려는데 한 친구가 팀에게 이어달리기를 하자고 제안하는 거에요. 이상했죠. 저한테는 이어달리기란 경기를 못 뛰었을 때 벌 받는 거였지, 노는 게 아니었거든요. 그런데 다들 너무 좋다며 편 나누고, 서로 밀치고, 찍고, 넘어지고. 이 와중에 계속 잘한다고 응원하며 신나서 난리가 났어요. 그 모습이 너무 신기하고 재밌으면서 이게 뭘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어요. 그래서 다음에 또 갔죠 (웃음).
처음과는 다르게 운동을 가르쳐주니 눈이 초롱초롱한거에요. 그 때 알았죠. 이 친구들에게 운동을 해 볼 기회가 없었던 거구나. 누가 재미있게 가르쳐주니까 잘하는구나. 자꾸 발전하는 모습이 보이더라고요.
그러면서 이 친구들은 뭘하는지 궁금해지기 시작했어요. 물어보니 여성운동하는 활동가 친구들이 많더라고요. 저는 그때까지 페미니스트가 뭔지도 몰랐거든요. 이후 그 친구들에게 하나하나 들어가며 배워오게 된거죠.
처음에는 친구들이 말하는 문화를 이해 못했어요. 이를테면, 나이 차이가 아무리 많이 나더라도 별명 부르면서 서로 반말하는 문화가 그랬어요. 운동계에서는 선후배 깍듯하게 대하는데, 진짜 얘네들 뭔가 싶었죠. 이런 저를 그 친구들이 잘못됐다고 혼내거나, 가르치거나, 다그치거나, 공부하자고 끌고 갔다면 제가 튕겨 나갔을 텐데, 부드럽게 본인들이 하는 것을 느껴보라는 식으로 제안을 주더라고요. 그 시간이 제 안에 차곡차곡 쌓이면서 제 눈이 떠지고, 관점도 변하면서, 제가 조금씩 변해갔어요. 가랑비에 옷 젖듯 스며든다는 말이 딱 맞았어요. 지금은 제가 제 주변 친구들을 데리고 와서 이 활동가 친구들을 만나게 해주고 있어요. 제가 설명을 잘하지 못하니까 잘 아는 친구가 이해되게 잘 설명 해주면, 제 주변 친구들도 저처럼 변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다시 돌아가서 말하자면, 이런 기본적인 의식, 문화와 더불어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접근법을 빨리 알았다면 한 거죠. 세상이 많이 변해가고 있지만 아직 그때의 저처럼 잘 모르고 있는 친구들이 많아서 아쉬운 마음에 매일 이야기해요.
“얘들아 공부해야 해. 더 많은 길이 있고, 방법이 있어" 하고 말이죠.
아는 만큼 보인다고, 이제야 제가 제대로 안 거예요. 그러니까 장애인들이 왜 그러는지 이제는 이해가 되는 거죠. 그래서 지금 청각장애인 친구들을 위해 재능 기부로 함께 시간을 보내기도 해요. 다양성에 대한 포용을 위해 지금도 계속 공부하고 있고요.
Q: 홈페이지에 성폭력 예방 교육 및 진로 교육이 적혀 있는 부분이 인상적이었어요. 해주시는 이야기 들으면서 대표님들이 세심하게 고려하여 변화를 위해 지켜야 하는 것이 담긴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양수안나:
성인지 교육이 특히 운동선수에게 더 많이 필요해요. 지금 생각하면 말이 안 되는 것들이 너무 많거든요.
신혜미:
운동선수들은 폐쇄적인 환경에서 지내요. 코치가 말하는 대로 아이들이 움직여야 팀이 제대로 돌아간다고 말을 했죠. 어떤 면에서 스포츠는 군대와 유사해요. 사실 역사적으로 팀 스포츠는 군대 전투에 기반하고 있기도 하고요. 제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운동은 한 사람 한 사람의 몸을 움직이는 고유한 신체 활동이에요. 사회가 많이 달라졌으니 이런 점을 고려하며 운동을 가르쳐야 하는데 아직 우리나라는 운동의 최종 목적은 경쟁이기 때문에 군대식을 따르는 거죠. 운동의 최종 목표를 경쟁이 아닌 즐거움으로 둔다면 험난하게 가르칠 필요가 없어요.
양수안나:
맞아요. 저는 이겨야 하는 스포츠를 했어야만 했어요. 아까 이야기한 활동가 여성 친구들은 몸을 움직이는 자체에 집중했던 거에요. 다시말해 남자가 아닌 여자 2-30여 명이 운동장을 점령해서 공을 이리저리 차며 뛰어다니는 것. 그 활동 자체에 집중하고 즐거워했던 거죠. 그런데 저는 유니폼을 입어야 했고, 정확한 자세로 패스해야 한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다가 ‘얘네 뭔데 저렇게 재미있게 해? 어라, 저건 축구가 아닌데?’ 하면서 제가 깨진 것이거든요.
그래서 저희가 아이들이나 성인 여성분들 가르칠 때도 그냥 하시면 되어요. 실수해도 괜찮아요, 누가 뭐라 하지 않아요.’라고 해요. 그러다 보면 참여자들도 결국에는 옆 사람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자기 것 하기 바쁘더라고요. 드디어 자신에게 집중하게 되는 거죠.
Q: 이야기 듣는데 제가 해방되어 자유로워지는 느낌이에요. 위밋업스포츠 하면서 가장 큰 보람은 무엇인가요?
신혜미:
참가자 표정에서 ‘내가 이걸 이제야 하다니.’ 하고 말하는 것을 느낄 수 있어요. 저희가 처음에 이것을 했던 원동력은 돈을 벌자가 아니었어요. 주짓수를 처음 하는데 너무 신난 거죠. 머리가 다 헝클어지고 뒤엉켜서 얼굴 빨개지는데 모두가 다 웃고 있는 거예요. 힘줘서 싸우는데도 웃다니요. 그때 참여자분이 하셨던 말은 ‘우리가 언제 이런 힘을 줘봤나?’ 였어요.
"여성은 정당한 규칙하에 싸워본 적이 거의 없잖아요. 그런데 사실은 그런 경험이 있었어야 했어요."

그래야 내 몸을 지키고 쓰는 법을 알게 되니까요. 배운 적은 없는데 이러면 안 된다, 저거는 하지 말아야 한다, 여자가 여자다워야한다는 식으로 여성에 대한 검열만 너무 심했던 거죠.
다들 자기몸을 쓰면서 희열을 느끼는 것을 스포츠 종목 하나하나 늘려가면서 더 확실히 알겠더라고요.
참여자들이 '왜 이런 운동을 우리가 이제야 하지?'
'왜 어릴적 체육 시간에 배우지 않았지?’ 라는 말을 많이 해요. 이게 바로 지금 우리가 힘들더라도 위밋업스포츠를 하고있는 이유예요.
양수안나:
체육 시간에 배운 체육이나 팀 기반 운동 경험이 좋지 않았던 거죠. 실수해서 혼나고 그러다 민폐 되고. 저희가 그걸 경험했었기 때문에, 위밋업스포츠 클래스에서는 박수치며 잘했다는 칭찬과 화이팅이라는 격려가 대부분이에요. 이런 경험이 운동을 재밌게 하는 거에요.
<양수안나 대표님은 다른 일정으로 아쉽게도 여기에서 자리를 떠나야 했다.>
Q: 제 경험이 생각나요. 축구, 농구, 야구, 배구는 남자 운동이야. 여자가 하기에 힘들어. 할 수 있는 것은 피구, 발야구 이 정도만 여자도 할 수 있어. 뭐 이런 분위기였던 것 같아요. 그런데 피구 하다가 공 맞으면 진짜 아프거든요? 하기 싫었어요. 왜 자꾸 때려. 그래서 빨리 죽고 싶었어요. 또 맞아서 아프다고 말하면, 그래 그래서 운동은 남자들이 하는 거야. 그럴 줄 알았어. 이렇게 되는 거죠.
신혜미:
이런 게 있는 것 같아요. 남자들도 아파요. 근데 우리나라는 남자들은 안 아파야한다고 생각하는 게 있어요. 남자에 대한 검열도 너무 심한 거죠. 남자는 왜 꼭 강해야 하나요? 약할 수 있어요. 저는 아이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요. 여자가 강할 수도 있고 남자가 약할 수도 있고, 이것은 성향의 문제이지 꼭 이래야 한다고 정해진 것은 없다고 말이죠. 우리는 프레임을 없애야 해요. 남자는 이래야 하고, 여자는 저래야 하고 하는 그 프레임 말이에요.
Q: 너무 동의해요. 위밋업스포츠를 이끌어가면서 어려워도 계속 해나가는 힘은 어디에서 나오나요?
신혜미:
저는 아이들의 엄마로 평생 살고 싶지 않아요. 애들은 자기 인생 찾아갈 거예요. 저는 저로 살고 싶어요. 각자의 인생대로 사는 것을 원해요. 그러면서도 멋있는 엄마가 되고 싶은거죠. 돈을 벌어서 멋있는 게 아니라, 우리 엄마는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사는 사람으로 멋있게 각인되고 싶은 거에요.
제 성향상 아이들 학원 스케줄 짜고 하는 것이 힘들더라고요. 맨날 이야기 해줘도 무슨 소리인지 잘 모르겠어요. 안 들려요. 근데 제 일을 하니까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신나게 일하니까 아이들이 엄마는 열심히 사는 사람으로 보는 거예요.
제가 미주알고주알 이야기를 안하는 성격이라서 아이들이 제가 구체적으로 무얼 하는지 몰랐어요. 그런데어느 날 학교 선생님이 궁금해 한다면서 물어보더라고요. 두루뭉술하게 강의도 하고 일도 한다고 말하라고 했더니, 인터넷으로 찾아봤나 봐요. 그러다 엄마가 하는 일을 알고 신기해하며, 자기도 드라마에 나오는 후계자 같이 위밋업스포츠를 나중에 물려받아야 하냐고 묻기도 했죠 (웃음).
윤여정 선생님도 이야기 한 부분이지만, 아이들에게 가장 좋은 공부는 좋은 엄마로서 사는 모습인 것 같아요. 저희는 늘 아이들에게 이야기해요.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는 너희가 해달라는 것 전부를 해주지 못한다. 원하는 것 다 사줄 수도 없다.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렇게 하는 게 옳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항상 최선을 다해서 사랑하고, 엄마 아빠로서 우리 인생을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여줄 거야'
가끔 아이들이 제가 일하는 곳에 와서 어떻게 일하는지를 봐요. 얼마 전에는 여성 마라톤 워킹 크루를 할 때 와서 인형 탈 쓰고 봉사도 했어요. 그럴 때 아이들이 저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만나고는, 좋은 사람들이 모여 재미있는 일을 하는 것 같다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그렇지? 엄마 이렇게 재미있는 일 해. 너도 재미있는 일을 찾아가. 그런데 엄마는 이 재미있는 것을 나이 들어서 찾았어. 그러니 너도 늦게 찾아도 돼’라고 이야기했어요.
지금의 아이들이요, 아직 꿈을 모르겠대요, 뭘 해야 할지 모르겠대요. 근데 몰라도 괜찮아요. 학생으로 어긋난 행동만 하지 않으면 어차피 인생은 계속 공부하며 배워가야 하는 것인데 천천히 하면 어때요, 다 괜찮더라고요.
Q: 맞아요. 평생 배워나가는 인생인데, 지금 다 하려고 바둥거리다 지치면 안 되죠. 대표님 앞으로의 꿈도 궁금해요.
신혜미:
동남아시아를 가보면요, 저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여자친구들이 스포츠 경험이 없어요. 나라 시스템이나 환경이 조성을 안 해준 거죠. 그래서 이다음에 저희 위밋업스포츠 강사님들하고 재미있는 스포츠를 경험할 수 있게 재능 기부 여행을 다니고 싶어요. 여자 학생들을 만나서 축구, 태권도, 농구, 배구와 같은 스포츠를 가르치면서 여행도 하는 것인데, 그 돈을 자비로 가고 싶어요.
그리고 또 하나는 위밋업스포츠 체육관을 만드는 것이에요. 그래서 스포츠도 즐기고 여성이 함께 할 수 있는 문화 공간으로 만들고 싶어요. 특히 이곳에서는 은퇴한 여성 선수들이 사회로 다시 돌아가기 전에, 의기소침한 마음, 겁이 나는 마음을 날려 보낼 수 있는 교육도 하면 좋겠고요. 처음 운동해보는 여성들이 자신에게 맞는 운동 종목도 찾아볼 수도 있으면 좋겠고요. 또 소통하는 공간이 되면 좋겠어요. 운동선수들은 네트워크가 운동선수들하고만 되어있어서 만남의 폭이 좁아요. 그래서 다양한 만남이 연결되고 소통하는 공간으로 만들어가고 싶어요.
Q: 은퇴한 여성들에 대해 생각을 해보지 못했는데 위밋업스포츠 덕에 그분들도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아요.
신혜미:
경력단절된 여자 운동선수들이 엄청 많아요. 국가대표, 금메달 이런 경험이 다 무슨 소용 있나요. 모두 그냥 집에 있는데. 얼마나 소중한 자산인데, 고스란히 사장시키기에는 너무 아쉬운 마음이 커요. 그래서 작게라도 저희와 함께 시작하고 이 시작이 마중물이 되어 내일을 바라보게 하고 싶어요.
실제로 저희 클래스에 와서 작은 날개짓을 한 전직 선수가 있었는데요. 클래스 참여자들이 잘한다는 리액션을 제대로 해주니깐 자부심이 마구 치솟는 거예요. 처음에는 쑥스러워했죠. 점점 익숙해지니깐 ‘맞다, 나 잘하던 사람이었지'를 조금씩 깨달으면서 자신감도 갖고 인생이 달라지더라고요.
Q: 우리 엄마여성들에게 자신을 찾을 수 있는 한마디 해주세요.
신혜미:
밖에 일만 일이 아니에요. 가정에서의 일도 여자만이 할 수 있고, 전문성을 필요로 하지요. 돈이 개입되어야만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든 다 일을 하는 거예요. 그리고 이 일들이 어떤 계기로 발현되는 시점이 올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저도 처지를 생각하며 힘들었던 적도 있고, 자신감이 하락했던 적도 있거든요. 지금 와서 돌아보니 그 시간이 꼭 필요했던 거예요. 힘든 상황에서 제가 또 성장을 거듭했더라고요.
그리고 자신에게 집중하라고 이야기 하고 싶어요. 아이는 이제 곧 나 없어도 잘살게 되어 있어요. 엄마가 평생 아이를 돌봐주며 살 지 않을 거면 지금 연습해야 해요. 그래야 아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방법을 터득해요. 특히 인간관계에서 말이죠. 남성들은 군대에서 억지일지라도 어떻게든 배우는 것이 있어요. 그런데 여성은 경험이 부족해요. 협력하고 소통하고 해결해나가고 함께 나아가는 것. 스포츠를 통해 배울 수 있어요. 그래서 엄마들이 스포츠를 해야 하는 것이기도 하고요.

Q: 뒤에 올 여성들에게는 먼저 가 본 선배로서 어떤 이야기를 해줄 수 있나요?
신혜미:
팀 스포츠를 꼭 해보면 좋겠어요. 그러니까 개인 운동은 나만 성장하는 거예요. 그런데 팀 스포츠는 상대방과 같이 협업해야 해요. 그럴 때 배려가 없으면 끌고 갈 수가 없어요. 특히 우리나라 여성들은 팀 스포츠를 경험할 수 있는 환경이 부족하죠. 동료애를 사회에 나가 일하면서 배우게 되는데, 이건 또 경쟁 구조라 한계가 있죠. 진짜 동료애를 가지며 함께 잘하기 위해 서로 발전시키는 것은 팀 스포츠밖에 없어요. 결국 몸을 움직이면서 연대하는 방식을 배우는 거죠.

Q: 제가 듣고 싶었던 것, 이거잖아요 (웃음). 몸을 움직이면서 연대한다는 것이 무엇일까 했는데, 진짜 팀 스포츠를 해보는 상상을 하니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아요.
신혜미:
저희가 돌아오는 6월 11일에 언니들 축구대회를 해요. 할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여성도 얼마나 스포츠에 진심인지 알겠더라고요. 그리고 나이가 어려도, 나이가 많아도 함께 할 수 있다는 것도 너무 좋고요. 이렇게 팀 스포츠의 또 하나의 장점이 세대 간의 소통이에요. 엄마와 딸이 함께 하면서 그냥 서로가 이해되어요. 젊은 분들은 나이 드신 분들 못한다고 타박하는 것이 아니라,

'저 나이에 저렇게 한다고?’ 하면서 그 노력을 높이 평가하게 되는 거죠. 또 나이 드신 분들은 젊은 분들 보고 ‘열정이 대단하다'며 박수 쳐주고요. 이렇게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거에요. 연대하는 데 있어 가장 필요한 부분이 서로 간의 이해라면, 팀 스포츠를 통해 가능하다는 거예요.
Q: 마지막으로 위밋업스포츠가 다른 스포츠 플랫폼과는 다른 점은 무엇일까요?
신혜미:
저희 위밋업스포츠 플랫폼은 우선 여성 전용이에요. 그리고 은퇴선수와 운동을 배우고 싶어하는 여성을 연결하는 것이고요. 그리고, 위밋업스포츠에 오시면 다양한 스포츠 종목을 경험해볼 수 있는데요. 중요한 것은 살 빼려는 목적이 아닌 진짜 운동이 재미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돼요.
저희는 운동은 누구나 즐길 수 있어야 하고 그러려면 소통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런 측면 때문에 청각 손실을 경험하고 있는 어르신 분들을 위해 저희는 운동 시 소통에 필요한 수어도 배워요. 함께 참여 할 수 있도록 독려도 하고, 재미있게 가르치려고 저희도 공부하고 있고요.
그리고 제일 자부심을 느끼는 것은 강사 교육이에요. 정기적으로 위밋업스포츠의 존재 이유와 가야 하는 방향성에 대해 강사님들을 교육하면서 소속감을 계속 유지 시켜주죠. 성인지 교육도 정기적으로 하고요. 저희가 더 예민해지고 세심하게 배려하기 위해서예요. 물론 유명한 타이틀을 가진 강사님들이 많아요. 그래도 내세우지 않아요. 한 사람 한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고 존중해요. 그래서 위밋업스포츠 취지에 맞게 클래스를 주도적으로 이끌어가요. 이러니 강사님 풀은 좀 자신 있다 강하게 말할 수 있네요 (웃음).
[Interviewer Note]
두 분의 성향은 다르다고 했지만, 시원시원한 속도감과 긍정적인 에너지는 너무 닮아 있었다. 인터뷰 내내 그 시원한 속도감을 함께 즐겼고, 한마디 한마디가 내 심장을 쿵쾅쿵쾅 거리게 하였다. 다음의 삶을 찾아가고 있는 나에게 지난 시간의 즐비한 경험들, 때로는 무수한 실패들이 언젠가는 서로 만나 빛을 낼 때가 있을 거라고 말해주는 듯했다.
그리고 가장 큰 수확은 스포츠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스포츠는 남성성이 짙은 영역이라고 생각했던 고정관념이 깨진 것이었다. 특히 팀 스포츠를 통해 사람들과 함께 웃으며, 신나고, 자유롭게 즐길 수 있는 시간이 될 수 있겠다는 희망이 생겼다. 아니 그 쾌감이 무엇일지가 궁금해졌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더 옳을 것 같다.
서로의 이해를 바탕으로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서로 발전시켜 나아가는 것이 연대라고 한다면, 팀 스포츠를 통해 나도 몸을 움직이면서 연대의 방식을 배우는 기회를 가져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위밋업스포츠를 만난 후부터 어떤 팀 스포츠를 해보면 재미있을까 하는 설레는 마음으로 짬짬이 인터넷을 뒤적이고 있다.
"라라레터는 위밋업스포츠의 신혜미, 양수안나 님의 다음의 삶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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