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씽라라] 나의 시간에 숨을 불어넣어 준 그.림.책.
- 라라레터
- 2022년 3월 24일
- 9분 분량
최종 수정일: 2022년 6월 8일
“그림을 좋아하던 소녀가 계속 살아 숨 쉬고 있었다.”
“육아에 매몰되었던 고립의 시간에 ‘숨’을 불어 넣어주었던 것은
‘아이와 함께 그림책을 읽는 것’이었다.”
안녕하세요, 월식님, 반갑고 감사합니다. 먼저 자기 소개 부탁 드릴게요.
> 저는 한 아이의 주양육자이고 그림책 작가로 활동하고 있어요.
저를 소개할 때 첫 번째로, 그림책 작가라고 말하는 것보다 한 아이의 주 양육자라고 이야기해요. 부정할 수 없는 가장 큰 부분이므로 의도적으로 그렇게 먼저 이야기 하려고 해요. 일 하면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주양육자로서 엄마라는 정체성을 말하면 자칫 소일거리 하는 사람, 전문성이 낮은 사람으로 여겨질까봐 어쩐지 조심스럽기도 하지만, 한 아이의 주양육자로 소개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두 번째로 그림책 작업을 하고 있다고 이야기 해요.
‘엄마’라는 말보다 ‘주양육자’로 표현하고자 하는 이유는 무언가요?
>‘엄마’라는 말이 소위 오염되었다고 여겨져요. 제 개인적으로, ‘엄마’라는 말을 하는 순간, 너무 많은 것들이 한꺼번에 몰려오는 기분이 들어요.
유튜브 등의 많은 매체에서 요즘 아이 키우는 이야기들을 정말 많이 하고 있죠. 그런데 대체로 키우는 주체를 엄마라고만 지칭하거든요. 아이 키우는 사람이 엄마 말고도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 모두가 될 수 있는데 엄마에게만 지워지는 듯한 말들이 불편해요. 많은 분들이 ‘엄마’라는 말 대신 ‘주양육자’라는 말을 사용하시면 좋지 않을까 생각해요.
월식님의 그림책에 나오는 친구들이 너무 사랑스러운데요, 그래서인지 어릴 적 월식님은 어떤 아이였는지 더욱 궁금해져요.
> 어렸을 때 모범생이었어요. 약간 탈선이라고 한 게, 책상을 화장실에 숨겨놓고 콘서트 보러가는 것이었는데요, 그때 국어 선생님이랑 마주쳤는데 선생님께서 그냥 보내주셨던 기억이 있네요. (웃음)
주변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잘 모르는, 약간 히키코모리 같은 아이이기도 했어요. (웃음) 어떤 날은, 학교에서 ‘도전 골든벨’을 녹화하는 날이었는데, 늘 이어폰을 꽂고 저만의 세계에 있느라 그 사실을 당일에 알았어요! (웃음)
하하하, 당일에 알았어도 어쩐지 소녀 ‘월식’은 ‘오늘 하는구나~’ 그러면서 대수롭지 않게 여겼을 것 같아요. 그런 소녀 ‘월식’의 꿈은 무엇이었나요?
> 그림을 그리고 싶었어요. 잘 그린다는 이야기도 들었고요. 그런데 부모님의 반대가 심했고 미대를 갈 수 없었답니다. 그 때는 공부 열심히 해서 어른들이 안내해주시는 몇 개 옵션 중 선택해야 하는 줄 알았어요.
저희 집 분위기가, 뭘 원하는지, 또는 되고 싶은지에 집중하기보다, 혹시 모를 부정적인 경우에 대비하고 준비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원칙을 잘 지키고, 대체로 충족해야 하는 기준이 있는 그런 경향이었던 것 같아요. 제가 하고 싶었던 것에 생각할 여유가 없었어요.
엄마가 되기 전 일과 관련하여 어떤 인생의 여행을 하셨나요?
> 부끄러운 얘기지만, 첫 직장에 들어가기까지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에 대해 충분히 고민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3, 4학년 거치는 시간, 그리고 졸업할 때 즈음 더 집중적으로 깊게 생각해 보았던 것 같아요. 중어중문학을 전공했는데, 전공 공부하는 게 좋았고, 대만 영화 보는 게 참 좋았어요. 졸업할 때가 다 되어서 라디오 PD라는 직업이 좋아 보였는데 역량도 부족하고 바로 취업을 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바로 포기했어요.
어쨌든, 늘 ‘어떤 콘텐츠를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싶다.’는 생각은 있었던 것 같아요.
첫 직장이 다행히 여성이 일하기에 괜찮은 분위기였고 10년 가까이 일했어요. 꽤 오랜 시간이죠? 하지만 거기서 직업적 목표가 있지는 않았어요. 다만, 출산 전에 중국 상해에 파견되어 일하면서, 다른 환경에서,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과 일하는 게 좋다고 느꼈어요. 앞으로 계속 해외 근무를 하고 싶다는 생각은 했어요.
그런데!! 임신을 하고나서 알았어요. 해외에서 일하려면 “나에게도 와이프가 필요하다.” “그런데 난 와이프가 없다.” (웃음)
엄마가 되었을 때 어떤 느낌 이었는지 이야기 해주시겠어요? 월식님에게 어떤 사건이었나요?
> 정말이지 새로운 세상이 열린 것이었어요. 전에는 뭔가 노력을 한다고 할 때, 내 자신을 좀 변화시키고 주변 환경을 나에게 좋게 작용하도록 바꿔가는 노력을 하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아이에 관련한 문제는 노력한다고 제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어요. 수유라든가, 수면 교육을 포함해서 많은 육아 과제들에 대해 파악하려고 공부를 해보아도 모르겠고, 그렇기에 노력도 잘 이뤄지지 않는 거예요.
어떤 엄마나 아마 한 권 씩 가지고 계실 그 유명한 육아 서적을 쓰신 분이 같은 동네 소아과 의사셨어요. 그 분께서는 그저 본인이 믿는 대로 이야기 하셨겠지만, 잊혀지지 않는 말을 하셨어요. 제가 얼만큼을 먹여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고 했을 때, 제 눈을 똑바로 보시면서,
“그건 엄마가 알죠.”
전 말문이 막혔어요..
그 때 들었던 생각은, 이 사회가 엄마들을 대하는 방식이 굉장히 폭력적이라는 것이었어요.
‘내가 부족해서 못 알아내고 있나?’라는 생각에 공부를 많이 하면서 애를 써봤지만, 늘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이의 필요를 끊임 없이 캐치해서 적정한 것을 제공해야 하는 당사자로서 내 맘대로 되지 않아서 너무 답답했어요. 게다가 아이는 계속 자라고 바뀌어서 끊임 없이 제가 업데이트 되어야 하고요. 그 때 처음으로 무능한 게 뭔지를 뼈저리게 느끼면서 큰 충격을 받았어요.
월식님은 아이 낳고 계속 일을 했나요?
> 아이를 낳고 1년 육아휴직을 가졌고요, 그 이후 3년 간, 아이가 4살 될 때까지 일을 했어요. 그 시간을 거치면서, ‘나는 일이 계속 필요한 사람인데, 직장이 원하는 방식으로는 내가 원하는 만큼 일할 수 없겠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어요.
좀 더 자세히 이야기 해주시겠어요? 아이 키우는 것 관련 해서 시간적인 문제 때문인가요 아니면, 다른 꿈이 생겼나요?
> 제가 다니던 회사가 비교적 아이 키우기 괜찮은 환경이었지만, ‘제가 원하는’ 방식으로 일을 하며 아이를 키울 수 없다는 생각을 했어요. 아무래도 일단 시간 문제가 컸지요. 예정되지 않은 야근을 할 때가 많았죠. 시간을 제가 컨트롤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이렇게 지속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남편의 회사 일과 환경을 생각해봤을 때 시간을 빼기가 어려웠기에 육아를 나눠 할 수 없겠다는 결론을 낼 수밖에 없었지요. 결국 ‘나 혼자 육아를 감당해야 한다.’는 것이 가장 큰 요인이 되었어요.
시부모님의 도움을 받고 있었는데, 늘 저만 빚지는 기분이 들었어요. 친정 부모님께서 아이를 돌봐주실 때에도 같은 기분이었고요. 이대로라면 가족들에 대한 원망이 커질 것이고, 잃는 게 더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돌아보면 육아휴직 마치고 복귀했을 때 가장 신나게 일했네요. (웃음) 출장이 많았는데, 아이와 애착이 잘 형성되지 않는 게 아닐까 하는 염려로 죄책감을 많이 느꼈던 기억도 나네요.
“아이와 그림책을 통해 교감하며 비로소 살아있다는 느낌을 갖다.”
그러던 중, ‘평생 할 수 있는 내 일을 갖고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현재 하고 있는 일이 그런 일이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았죠. 예전부터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고, 직장 다니면서 주 1회 화실을 꾸준히 다니고 있었어요.
아이를 키우며 그림책을 접하고는, 그림책 장르에 빠져들게 되었어요. 이것은 ‘약자를 위한 예술이 아닌가.’ 생각했어요. 두 사람이 함께 즐기는 시각 예술이라고 생각해요. 독자가 한 명이 아니라 두 명이죠.
가장 중요한 계기로는, 책을 읽어줄 때 “가장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는다는 것이었어요. 아이랑 소통이 되기 전에는 힘듦을 너무 많이 느꼈어요. 언어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었을 때 즐거움이 시작되었어요. 물론, 아이가 말을 못할 때에도 그림책을 읽어줄 때는 아이와 소통한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림책’이란 장르가 너무 멋진데, 내가 만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어요. 이걸 못하면 못살겠다는 확신이 와서 학교를 알아 보고, 아이 네 살 때 퇴사를 하고, 바로 파주에 있는 파티(PaTI*)에 들어갔어요. 주변 사람들이 회사 10년 채우면 이런 저런 혜택이 많을 텐데 다 누리고 나오지 그러냐는 이야기를 많이 하셨는데, 그 때 그 상황을 1년 더 끌고 가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여겨졌어요.
*PaTI http://www.pati.kr/ 인문정신과 미래가치에 바탕한 창의교육을 위해 2013년 파주출판도시에 디자이너들이 세운 배움터. 특수성에 갇히지 않는 보편적 앎을 추구하며 창조적 배움이 있는 지구 모든 현장 및 사람들, 단체와 힘을 모아 상상력 넘치며 공동체적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배움을 실천하는 곳. |
정말이지 드라마틱한 전환의 시기를 맞이한 것이네요. 그림책 작업을 시작하게 된 당시의 이야기를 좀 더 해주시겠어요?
> 제가 그림책 작업을 시작할 즈음 한국 그림책이 발전하고 있는 시기였어요. 작가 분들의 작업을 보면서, ‘내가 생각하던 어린이 그림책이 그냥 그림책이 아니었구나.’를 알게 되었어요. 2010년, 2011년 경에 나왔던 한국의 그림책들, 백희나 작가, 이수지 작가 등의 작품들을 많이들 알고 계실 거에요. 이 때 출산 전이었는데, 그림책을 혼자서 보기 시작했어요. 드디어 아이에게 읽어줄 수 있는 시기가 되었을 때, 읽어주면서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게 되었어요. 제가 좋아하는 그림책을 읽어줄 때 기분이 너무 좋아요. 읽어주는 사람이 일단 신이 나야 그 시간도 즐거워지는 것 같아요.
월식님의 작품에 대해 이야기 부탁 드려요.
> 주로 일상에서 소재를 찾는 편인데요, 첫 책 『모든 이빨 연구소』(2021, 씨드북)도 같은 경우였어요. 아이가 이가 흔들리기 시작하고 빠지게 되잖아요? 이가 빠지는 게 어떤 의미인지 저는 몰랐지만, 이가 빠지는 것을 태어나서 처음으로 경험하는 아이의 감정이 보였어요. 두려우면서 기대가 되는 거죠. 아이에게 소중한 순간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러면서 그것을 축하해주는 마음으로 그려나가고 싶었어요.

이빨에 관해 옛날부터 내려오는 이야기, 이를테면 까치가 이를 물어간다는 이야기도 너무 귀여워요. 그 때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그런 이야기를 건네주시는 그 마음, 그 마음이 저의 마음이랑 같아요. 제가 아이에게 할 수 있는 새로운 이빨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어요. 아이가 그 시간에 느끼는 감정, 아이의 이야기가 모두 소재가 되었지요. 그래서 탄생한 것이 ‘이빨이 궁금해요’에요.
두 번째 책은 ‘만지지 않아요’에요. 코로나 이전, 코로나라는 것이 세상에 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던 시절에 학교에서 보낸 가정통신문에 ‘친구를 만지지 않습니다.’라는 메시지가 있었어요. 물론 그 의미는 ‘상대가 원하지 않을 때 접촉을 하지 않는다.’이지만, 저에겐 너무 다르게 느껴졌어요. 모든 문제를 발생시키지 않으려면 만지지 않아야 하는, 미연에 모든 걸 ‘차단’시키는 것이라고 느껴졌고 충격을 받았어요.
이 때의 느낌이 잊혀지지 않고 계속 마음에 남아 있었는데, 코로나가 오고 진짜로 만질 수 없는 상황이 되었어요. ‘만질 수 없는데, 친구가 될 수 있나?’라는 생각을 하며 지었지요.

그러한 순수 창작 활동이 정말 쉽지 않은 일인데요. 당시 작업하실 때 어떤 시간을 보내셨어요?
> 코로나 이전에는 미친 듯 달리던 시기를 보냈네요. PaTI를 다니기 시작하고 두 번째 책이 나올 때까지 균형이란 것이 없었어요. 잠을 줄이고 밤을 새며 작업을 하곤 했으니까요. 아이에게 안 좋은 영향을 줄 걸 알았지만 감수하고 했어요. 작업을 하지 않는 데에서 오는 마음의 고통이 더 심했으니까요.
2018년에 PaTI을 졸업하고 코로나 전까지는, 아이가 학교 갔을 때와 밤 시간을 이용하고, 학원에 보내어 제 작업 시간을 확보했어요. 지금 생각하면 미안하기도 한데 아이가 또 잘 적응해줬어요.
제 작업들이 책으로 나오고, 공모전도 되어 보고, 상도 받았지만 그 기쁨이 생각보다 짧았어요. 코로나 중반기로 들어서면서 너무 힘들어서였던 건지, 어쨌든 큰 충격이었어요. 하고 싶었던 일을 드디어 하고 있는데 ‘내 마음이 왜 이렇지?’ ‘이건 뭐지?’
아하,,, 왜 그랬을까요? 그 힘든 감정이 들고는 어떻게 하셨나요?
> 그 때부터 몸과 마음이 참 힘들었고, 식물을 먼저 들이기 시작했어요. 식물 곁에 있는 것 만으로도, 보는 것 만으로도 위로가 되더라고요. 그러다가 또 우연히 명상을 배우게 되면서 모든 것이 바뀌었어요.
심리상담을 받으며 배웠던 모든 이론적인 것이 머리로는 이해가 되고, 그것을 통해 나의 생각이 왜곡되어 있음을 알긴 알겠는데, 그 생각을 막을 방법을 몰랐어요. 그러나 명상을 통해 생각의 속성을 알게 되고, ‘결국 생각은 내 것이 아니다.’라는 깨달음이 오면서 많은 전환이 되었어요.

오! 명상이 큰 도움이 된 것 같네요. 명상을 통해 변화된 과정을 좀 더 이야기해 주신다면요?
> 명상을 하면서 생각의 속성을 알게 되었는데요, 생각을 내가 하는 것 같지만 가만히 관찰해보면 굉장히 랜덤하게 일어나는 것이에요. 또, 나의 습관, 경험한 것들로 인해 나타나고, 생각을 컨트롤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왜 사라지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서 ‘생각이 원래 이런 것이구나.’라고 깨닫게 된 것이지요. 과거나 미래에 대해 골몰한 나머지 ‘지금 이 순간’을 날려버리고 있다는 것을 명상을 통해 알아가고 있는 것 같아요.
아이를 대하는 태도에 있어서도, 물론 지금도 옛 습관이 남아있기에 집착하는 면이 있어요. 작업을 더 많이 하고 싶은데 아이 때문에 못한다고 하는 생각, 즉 제가 만든 기준으로 계속 저를 소진시켰어요. 아마 아이에게도 다 전달이 되었을 것인데, 후회되고 아쉬운 부분이에요. 생각이 좀 더 일찍 전환되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때’라는 것이 왔어야 하는 것이었겠지요. 하고 싶은 일이 있다는 것 자체에 괴로움을 느꼈어요. ‘하고 싶은 일이 없다면 얼마나 좋을까. 왜 이 욕구는 이렇게 날 괴롭히지?’ 하며 말이죠.
그런데 이게 착각이었던 거죠. 그냥 할 수 있는 시간에 하면 되는 것이었어요. 왜곡된 생각들이 저를 나아가지 못하게 한 것임을 뒤늦게 알았어요. 지금은 훨씬 전보다 유연해졌어요. 반드시 지금 해야 한다는 생각은 없어졌고, 우연찮게 시간이 나면 그 때 그냥 하면 되고, 중간에 방해가 들어와도, ‘왔구나.’ 하면서 중단 될 수도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코로나 중기까지, 주말에 남편에게 아이를 맡기고 일이 있어 나가면서 ‘왜 눈치가 보이고 힘들지? 주중 5일은 내가 아이를 돌봤는데 내가 왜 이러지?’ 그랬는데요, 그 눈치를 스스로 주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스스로 내 일을 인정하지 않고. 어떤 명분을 제시해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을 스스로 주면서 제 자신을 가로막고 있었어요. 일단 나부터 생각을 전환하여야 행동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고 상대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는 것 같아요.
나의 시선이 바뀌었어야 했던 거죠. 주말에 빈둥거려 본 적이 없었는데 이제는 빈둥거리기도 해요. 아주 큰 변화에요.
그러나 이런 생각이 일종의 ‘합리화’가 아닌가 생각되기도 해요. 더 해야 하는 시기에 해낼 용기가 없어서 핑계를 대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거지요. 하지만 이 생각조차도 역시 습관에 의해 나오는 생각임을 이제는 아는 것 같아요.
이게 제 삶에 균형을 가져오는 방식이랍니다.
앞으로 어떤 꿈을 꾸며 살고 싶으신가요? 버킷 리스트로 이야기 해주셔도 좋아요.
> 옛날엔 무언가를 예방하거나 준비하려는 차원에서 계획을 많이 세웠지만, 지금은 묵묵히 현재 하고 있는 작가로서의 작업을 꾸준히 하는 것이 계획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강렬하게 원하는 것은 많이 없어진 것 같아요.
작가로서의 꿈이라면, 작업을 꾸준히 내놓을 수 있는 작가이고 싶어요. 예전엔 작품 하나 하나 다 잘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면, 지금은 꾸준히 작업을 낼 수만 있어도 좋겠다 싶어요. 더 나아가 꿈을 하나 더 꾼다면, 누군가 언젠가 제 작업을 읽고, ‘이 책 가까이 두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실 수 있다면, 하고 바라요.
지금 하고 있는 작업은 식물들이 주인공이 되어 펼치는 코로나 기간 동안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려고 하는데 기대 많이 해주세요~!

여자에게 일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 특별히 여성이라기보다는 모든 사람에게 일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도구 또는 매개체라고 봐요. 즉, 일은 누군가와 도움을 주고 받는 것이지 일이 나를 말해 주거나, 나를 규정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물론 일은 중요하지만, 일을 해야 반드시 내 가치가 지켜지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에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렇게 생각하기가 어렵지만, 오로지 내 가치를 내가 버는 돈 만큼이라고 여기지 않는 태도가 필요한 것 같아요.
지금 엄마로 살고 있는 동지들에게 응원이나 격려의 이야기를 한다면요? > 얘기해줄 수 있는 입장은 아닌 것 같지만, 가장 아쉽다고 생각했던 것이, 엄마인 여성으로서 ‘후에 올 여성’에게 말하고 싶은 것은, 다른 사람의 욕구를 파악하는 데 에너지를 너무 쓰지 말고 자신의 욕구를 면밀히 살펴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지셨으면 좋겠다는 것이에요. 지금의 나의 욕구가 혹시 남들이 나에게 심어놓은 것이 아닌지 생각해 보기를 바라요. '나'라는 것의 실체를 파악하는 것, 그것을 당부 드리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월식님이 라라레터 1호에 기고해주셨던, 라라기획의 ‘매우 가정적인 엄마’에 대한 반응이 무척 뜨거웠어요. 독자들의 이해를 조금 더 높여주기 위해 한가지 여쭈어 보자면, 주양육자로서의 돌봄 노동에 대한 인식을 보다 구체적으로 잡아주셨는데 그 글을 쓰시면서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요?
> 주양육자로서의 일이 너무 중요함에도 아무도 그에 대해 경제적 대가를 치르려 하지 않아요. 국가나 기업은 현재 자라나고 있는 세대들에 의해 향후에 발전하게 되는 것인데, 아무도 육아에 대해 경제적으로 손해를 보지 않으려 하고 그냥 거져 먹으려 하는 건 큰 문제라고 생각해요. 안좋은 생각일 수 있는데, 제가 지금 주양육자로서의 일은 경제적으로 환산하면 얼마나 큰 가치인지 생각해 봐요. 분명히 가치가 만들어지고 있는데 이것은 아무도 돈으로 환산해주지 않는 거에요. 엄마들만 자본주의가 없는 어떤 별세상에서 따로 살고 있지 않은데 말이죠. 예를 들어, 기업은 두 사람에게 줄 돈을 한 사람에게 주고 남는 부가 가치는 그대로 가져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제 일이 주양육자의 일보다 중요하지 않은 것이 아닌데, 주양육자로서 일하기 때문에 제 일을 이 정도밖에 못한다는 것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가끔씩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원망을 많이 하기도 했어요.
현재 내린 잠정적 결론은, 싱글이면서 시간을 더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사람들이 작업하는 것을 보면서 저렇게 해보고 싶긴 하지만, 그것이 가능하지 않음을 받아들이고 있어요. 아이를 돌보기 위해 포기하는 시간도 있지만 아이로 인해 할 수 있는 작업과 생각도 있음을 잊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해요. 제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려고 해요.
여기까지 월식님과 만나보았습니다. 귀한 시간 내어 주신 월식님 정말 감사 드려요. 바람대로 그림책을 꾸준히 계속 만들어내는 삶을 영위하시기를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정리: 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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