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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씽라라] 욕망이 이끄는대로, 당당하게, 나의 길은 내가 만들지

  • 작성자 사진: 라라레터
    라라레터
  • 2022년 4월 20일
  • 11분 분량

최종 수정일: 2022년 6월 8일

[유쾌한 욜리 님 편]


욜리와의 인연은 13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새로 이직한 회사 엘리베이터 앞에서 스쳤을 때, 그녀는 만삭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곧 회사를 떠났다. 우연히 1년 후 다른 곳에서 그녀와 재회하게 되었는데, 그때도 만삭이었고 곧 육아휴직을 앞두고 있다고 하였다. 그 후로 우리의 인연은 계속되어, 담담하게 자신의 길을 만들어가는 욜리를 옆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


오늘 만난 그녀는 그 옛날 2번의 재회 때와는 다르게 엄마여성이면서, 마케터이고, Creative Yolly(크레이티브 욜리) 브랜드 창업가로 자신의 커리어를 확장해가고 있다. 그리고 사람들을 만나 영감을 받아야 에너지가 난다는 그녀는 지금도 자신이 좋아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가고 있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내일 할 수 없기에, 자신을 믿고 즐겁게 만들어 나간다는 유쾌한 욜리 님. 그녀의 이야기를 여기에 담아본다.


욕심쟁이 욜리, 어려서부터 사업가를 꿈꾸다.


Q. 오랜만이에요 욜리. 엄마여성들을 만나 꿈의 조각을 이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나서부터 욜리 생각을 계속했어요. 그 이유는 엄마이면서, 어느 회사 소속 마케터이고, 또 본인의 브랜드도 기획하고 만들어 나가고 있는 모습에 반해서 이야기를 심층적으로 나누어 봐야겠다 싶었죠. 우리 이야기의 시작은 욜리를 소개하면서 해볼까요?


저는 사실 하고 싶은 것이 지금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었는데, 나이가 들고 가족이 생기면서 많이 줄어들었어요. 그래도 여전히 100% 내려놓기에 욕심이 많은 여자입니다. (웃음)


커리어로는 15년 동안 ‘마케팅’ 세 글자가 들어간 여러 기업에서 다양한 고객들을 만나며 그들의 변화를 읽어내는 것을 업으로, 그리고 인생의 재미로 알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현재는 나만의 브랜드도 만들어 세상에 보여주고 있어요.


Q. 욕심쟁이군요. (웃음) 어렸을 때도 많은 것을 하고 싶었나요?


어릴 때 외가와 친가 통틀어서 제가 첫 손주였어요. 그래서 예쁨과 관심을 많이 받았죠. 그리고 공부도 못하지 않아서 기대가 컸는데요. 이 때문에 내가 해낼 수 있는 모든 것은 완벽하게 100점으로 만들고 싶었어요. (웃음)


Q. 아하, 공부에 욕심이 많았군요. 공부를 무지 좋아했나봐요. 학창 시절 어땠는지 이야기해주세요.


아니요. 공부를 좋아했다기보다는 초등학교 때는 조금만 하면 1등을 할 수 있을 것 같으니까 하고 싶은 욕구가 마구 생겨난 거죠. 모든 과목을 100점 받아서 1등이라는 성과를 내는 것이 재미 있었어요.


사실 엄마가 고등학교 때 계속 전교 1등을 했을 정도로 공부를 잘하셨는데, 대학을 포기하셔야 했대요. 엄마한테 남동생이 두 분 계시는데 집에서 동생들을 먼저 밀어주었던 거죠. 그래서 본인이 못다 한 꿈을 저에게 투영하고 싶었나 봐요. 지금의 ‘라떼는 말이야' 식으로 강요하지는 않았지만, 자식에 대한 기대가 컸어요.


그러다가 제가 고등학교에 올라가면서 처음 시련을 겪어봤어요.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 모여있던 곳에서 1등을 못 하게 된 거죠. 하고 싶다고 다 할 수 있는 것은 아니구나 싶어서 1등의 목표를 내려놓았어요. (웃음)


대학 시절에는 공부보다 대학 때만 할 수 있는 것을 해야겠다 싶어 다양한 활동을 했어요. 반 부대표도 맡아했고, 배우는 모임도 많이 찾아다녔고, 또 동아리 활동도 열심히 했죠. 그러면서 선후배 관계 맺는 것에 더욱 관심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열심히 만나고, 함께 놀러 다녔어요.


사람을 얼마나 좋아했는지 지금도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는데요. 대학교 1학년 어느 날이었어요. 제 학과가 학교 정문에서 굉장히 멀리 떨어져 있었는데, 아는 사람을 1m에 한 번씩 만나게 되는 거예요. 그 친구들과 잠시 인사하고 이야기 나누는데, 옆에 있던 친구가 어떻게 이렇게 많은 사람을 아느냐고 하더라고요. 그 말에 저 스스로가 뿌듯해지면서 자랑스웠어요. (웃음)


그런데 너무 열심히 사람을 만난 거죠. 1년 되니 번아웃이 오더라고요. (웃음) 아침, 점심, 저녁 사람 만나는 스케줄이 주말까지, 거의 매일 있을 정도였어요. 사람들이 나를 찾고, 함께 고민 나누고, 새로운 사람들 만나는 것을 너무 좋아했어요. 그런데 아시다시피 인간관계가 쉽지 않잖아요? (웃음) 조금은 내려놓아야겠다 싶어서 6개월을 휴학했어요.


Q. 와, 사람을 많이 만나 번아웃이 와서 휴학했다고요? (웃음) 보통 스펙을 쌓거나 공부를 더 하기 위해 휴학한다는 이야기는 들어봤는데, 인간관계 때문에 휴학을 했다니요? (웃음)


네. 저에게 맞는 인간관계에 대한 생각을 조용히 해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죠. (웃음). 어떻게 보면 강박적으로 약속을 만들어 사람을 만나는 루틴을 지켜 왔기 때문에, 쉬는 동안 제 생각의 전환도 오고 마음도 편해졌어요. 이후 불필요한 관계까지 내 삶으로 끌어들이지 않게 되었답니다.


Q. 휴학 기간이 삶에 있어서 중요한 이정표가 되지 않았을까 싶네요. 욜리는 어렸을 때 꿈은 무엇이었나요?


아빠 이야기부터 시작 되는데요. 아빠가 선장이었어요. 그런데 뱃멀미를 해서 (웃음) 오래 하지 못하셨어요. (웃음) 그 뒤로 가족을 책임져야 했기에 사업을 시도했는데, 그것도 잘 안됐어요. 정확하게는 여러 번 실패를 거듭했죠. 그 모습을 보면서 막연하게 ‘대표, 그것도 잘나가는 대표님'이 되어야지 하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경영학과를 갔던 거죠.


영감과 성장은 사람들과의 만남에서 시작되다.

Q. 어려서부터 대표님이 꿈이셨군요. 대표님이 되기 전에는 어떤 커리어를 걸어 왔나요?


잘나가는 대표가 되고 싶어 경영학을 4년 배웠지만, 졸업 후 바로 뛰어들려하니 조금 두려웠어요. 그래서 일단 회사에 가서 경험해보자 생각했죠. 경영학을 배우는 동안에는 마케팅 과목을 제일 좋아했는데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브랜드에 대한 케이스 스터디를 하다 보니 실제로 회사 내부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고객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전달하는지, 잘하고 못하는 것이 무엇인지가 명확하게 보이는 점이 좋았어요. 조금 더 실전에 가까워 보여서 깊게 배우고 싶었죠. 그래서 마케팅 관련 회사들에 지원서를 넣었어요.


Q. 그랬군요. 그런데 마케팅 회사 종류가 다양하잖아요. 어떻게 마케팅 조사 회사를 선택 하셨나요?


선배가 소개해 주었어요. 면접을 제법 많이 보러 다니던 중, ‘00 소비자 조사회사’를 만나고 단번에 결정했어요. 그 이유는 면접관님이 마음에 무척 들었거든요. 그 분에게 꼭 배우고 싶었어요.


또 마케팅 조사회사에서 하는 일도 좋았어요. 회사가 마케팅 업무를 할 때 가장 필요한 것이 고객이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그리고 무엇을 더 원하는지 아는 것인데요. 마케팅 조사회사의 주 업무는 다양한 분야의 회사의 주요 고객에 대해 조사하고 분석을 대행해주는 것이에요. 저는 여러 가지에 호기심이 많아 다양한 것을 배우고, 새로운 것을 계속해서 도전하는 것을 좋아했기에 마음에 들었죠. 특히 산업군을 넘나들며 프로젝트를 했는데, 끊임없이 새로운 영역을 배우고 알아가야 하는 과정이 저의 성향과 굉장히 잘 맞았어요.


그래서 마케팅의 한 획을 긋는 사람이 되는 꿈을 꾸며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었는데, 결혼과 함께 아이가 생긴 것이죠. 출산 후 1년 육아휴직을 받기도 했지만, 다시 회사로 돌아가지는 못했답니다.


Q. 사람을 만나 계속 성장해야 하는 욜리인데, 퇴사 후 어떤 삶을 살았을까 궁금하네요.


그렇죠. 일을 안 한다는 것을 스스로 받아들이기 어려웠어요. 마케터가 쉬면 그 인생이 끝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 그랬던 것 같아요. 시장에서 없어지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던 거예요.


마케팅 부서가 내부에 있는 인하우스 기업은 아이를 양육하면서 일하기에 조금 수월할 것으로 생각해서 이직을 시도했어요. 이직한 곳의 회사 카테고리가 주류 쪽이었는데요. 마케터로서 이 시장의 고객 특성을 잘 알려면 현장에 직접 가서 고객을 만나보고 시장 현황도 확인하는 등, 내 제품을 경험하는 고객이 모여있는 그 현장에 가보아야 하는데, 주류는 현장이 보통 밤에 일어나니 육아를 하며 일하는 엄마가 감당할 수 없겠더라고요. 그때 둘째 임신 중이었는데, 결국 출산 전날까지 일하고 퇴사를 결정했어요. 이후 1년은 말 그대로 무소속으로 지냈어요.


Q. 일보다는 갓난쟁이 아이가 우선이 되죠. 욜리에게 엄마가 된다는 의미는 어땠어요?


첫 아이가 허니문 베이비였어요. 솔직하게 기쁘기보다는 왜 지금일까 하는 생각이 더 컸어요. 그때 나이가 서른이었는데, 커리어가 본격적인 궤도에 오르는 때라고 생각했었죠. 그런데 생각하지도 못한 임신이라니 아주 심란했어요. 그런데 배 속에서 아이가 자라나는 경험이 좋은 거예요. 다양한 경험을 좋아하는 저에게 딱 맞았죠. (웃음) 특히 배 속에서 아이가 꿈틀거릴 때 느낄 수 있는 동물적인 감각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묘한 기분을 주었어요. 남편도 느끼지 못하는 오로지 나만 느껴보는 감정이기도 하잖아요.


그리고 임신기간 동안 저 일 잘했어요. (웃음) 몸의 변화가 컨디션이나 체력에 영향을 주지 않았거든요. 몸이 힘들어야 팀장님에게 ‘저 일 좀 빼주세요’라고 요청할 텐데 말이죠. 오히려 반대로 펄펄 날아다닌 거죠. 지방까지 내려가서 클라이언트와 토론도 하고, 출산 전날까지도 야근을 했을 정도예요. 일하는 데 있어 크게 달라지지 않으니 내가 임신 때문에 뭘 못하고 있다던가, 회사에 피해를 준다던가 하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어요.


그러다 보니, 일을 잠시 뒤에 두고 아이와 함께 지내는 경험이 하고 싶어지더라고요. 그래서 출산 후 잠시 쉬었던 것인데, 혹시하는 마음에 그 기간 동안 00 대기업 면접을 봤는데 덜컥 합격했어요. 그러나 마지막에 제가 안가겠다고 했어요. 아이를 두고 도저히 안 되겠더라고요. 일단 합격한 것으로 자신감은 생겼으니 그러면 됐다 싶어 깔끔하게 보내버렸죠. (웃음)


Q. 임신도 새로운 경험이어서 온전히 누려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 저에게 새롭게 다가오네요. 지금의 회사로 다시 돌아오기까지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조금 더 자세히 이야기해주시겠어요?


저는 아이 둘 다 육아휴직을 사용했어요. 둘째는 육아휴직 후 1년을 더 쉬었는데요. 2년을 연달아 쉬다 보니 불안감이 찾아왔어요. 일을 안 하는 내 모습을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인지, 이대로 사회에 다시 못 돌아갈 것 같았어요.


그래서 많은 곳에 이력서를 내기 시작했는데 최종적으로 결정한 곳은 대기업이기는 했지만, 기존보다 연봉을 많이 낮추어 갔어요. 이유는 나 자신도 내가 얼마나 잘 해낼 수 있을지 미덥지 않았고, 아이 둘 있는 아줌마를 받아주는 회사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기에 연봉 생각보다는 제일 먼저 불러주는 곳에 가서 현장감을 되찾는 것이 중요하겠다 싶었어요. 들어갔다가 아니면 또 이직하면 되니까요. (웃음)


Q. 아이 둘을 양육하면서도 회사로 돌아가고 싶었던 이유는 무엇인가요?


사람에게는 적성이 있잖아요. 전 육아 적성이 아니더라구요 (웃음). 앞서 말한 것처럼 저는 번아웃이 올 정도로 인간관계, 교류 이런 것이 중요한데, 어린아이들은 말을 못 하잖아요. 내가 열심히 말하고 있는데 되돌아오는 것이 없어요. 그리고 아이가 울거나 말하는 뜻도 모르겠구요. 그래서 힘들었어요. (웃음)


아이 친구 엄마들하고 좋은 관계를 맺으며 지내서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제가 관심 있는 마케팅 분야라든지, 주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지 못하니까,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 같은 것이 계속 생기더라고요. 그때 제 마음속에서 무엇을 원하는지를 제대로 알게 된 것 같아요.


Q. 인간관계는 어디서든 할 수 있지만 내가 가진 욕구는 어디서든 채워지는 것은 아니니 허전함이 생길 수밖에 없을 것 같네요. 그래서 회사로 다시 돌아왔는데, 일하면서 육아하는 것은 괜찮았나요?


결국 엄마에게 도움을 요청했죠. (웃음) 엄마 인생을 놓고 보면 정말 미안하지만 혼자서는 감당이 안 되더라고요. (웃음)


그리고 저는 애한테 올인하지 않아요. 물론 희생은 하죠. 커리어적으로 좋은 기회가 다섯 번 정도 있었는데 한두 번 정도만 택한 것도 희생이기는 하니까요. 그런데 아이한테 올인하지 않는다고 미안해하지는 않아요. 아이와 내가 24시간 붙어 있는다고 해서 좋은 관계가 되는 것은 아니니까요. 함께하는 시간에는 최선을 다하겠지만, 엄마 행복이 우선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저는 계속 이야기하지만 인간관계가 중요해요. (웃음) 그래서 회식도 잘 참석하고요, 친구들 만남도 갖고, 배우는 모임도 참석해요.


또 스스로 틀에 갇히는 것이 싫어 계속 깨면서 사는 것을 지향하거든요. 그래서 사람이 필요해요. 사람을 만나야 영감을 얻을 수 있으니까요. 그 기회를 잃으면 제가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아이와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저의 성장 시간을 놓치지 않고 꼭 확보하려고 하는 것이죠.



마케터로 임팩트를 내면서 동시에 사업을 시작하다.

Q. 어떤 상황에서도 계속 성장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멋지네요. 그런데 욜리, 지금 회사 일 뿐 아니라 자신의 브랜드도 일구어가고 있잖아요. 그 소개도 해주세요.


Creative Yolly(크리에이티브 욜리) 라는 미술용품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어요. 미국 시장에 먼저 론칭을 했고, 현재는 국내에서도 판매를 하고 있습니다. 특히 전문가이신 미술학원 원장님들께 많은 사랑을 받고 있어서 너무나 뿌듯하고 감사해하고 있답니다. (웃음)


제 브랜드를 론칭하게 된 이유는요. 대표가 되고 싶은 꿈도 있었지만 이다음의 삶 때문이에요. 20, 30대 초반에는 주위 사람들과 커리어 개발에 대한 이야기를 굉장히 많이 했는데, 나이가 30대 후반으로 치달으니 이다음의 인생은 무엇을 하며 보낼지, 지금의 커리어를 언제까지 이어갈 수 있을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더라고요.


Q. 한국 사회에서 여성이 회사생활을 오래 하는 것이 쉽지 않아서 그런 걱정을 일찍 하는 것 아닌가 싶네요.


사실 대기업 중심으로 여성 임원이 배출되기도 하고, 그 연령도 낮아지고 있지만, 극히 일부에요. 그런 위치로 가지 못하면 여성으로서 회사 안의 자리는 늘 불안할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더 늦기 전에 내 사업을 준비하고 있어야겠다 생각이 들어 시작하게 되었어요.


Q. 미국 아마존 셀러로 시작하셨어요. 그 이유는요?


회사 다니고 육아하면서 할 수 있는 정도로 시작하고 싶어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제 브랜드를 론칭하고 테스트해볼 수 있는 시장이기도 했고요. 퇴직 후 노년의 삶을 위해 준비하게 된 거죠.


Q. 드디어 꿈을 이루신 거네요. 셀링이라고 하면 상품을 소싱해서 판다는 느낌인데, 욜리는 브랜드를 론칭할 생각을 하셨네요?


저는 꿈을 이루면서도 경제적 수단으로도 활용하고 싶었어요. 지금의 월급을 대체할 수 있을 만큼 되면 좋지만, 회사를 못 다니게 되는 상황이 되었을 때도 아이를 키울 수 있는 경제력은 계속 유지할 수 있어야겠다 싶었죠. 그래서 무엇인가를 만들어 놓아야 하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었어요.


그런데 이제 대부분의 시장이 다 포화상태에요. 경쟁이 치열한 거죠. 이윤을 빨리 만드는 구조를 만들려면 남의 물건을 가져다 파는 것이 가장 쉬워요. 앞단에 준비할 시간도 필요 없고, 검증된 제품이면 광고하지 않아도 되고, 또 이제는 배송도 위탁이 가능하죠. 그러다 보니 많은 사람이 몰려들어 그 물건을 가져와 팔아요. 거기서 살아남으려면 결국 가격경쟁밖에는 답이 없어 자꾸 싸게 내놓아야 해요. 전 그런 형태를 만들고 싶지 않았어요. 멀리 보고 싶었죠. 내 브랜드는 내가 주지 않으면 못 파는 것이니까 나만의 경쟁력인 거죠. 그것을 만들어 나가고 싶었어요.


Q. 브랜드 론칭이라고 하면 기업에서나 할 것만 같고, 1인이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이 아직 생소해요.


안 해보면 그럴 수 있어요. 이제는 필요한 것은 쉽게 구할 수 있거든요. 강의도 많고요, 브랜딩 디자인과 패키징도 제가 못해도 괜찮아요. 전문가를 소싱할 수 있는 플랫폼이 워낙에 많으니까요. 온라인으로 다 연결되어있으니 물건 소싱도, 전문가 영입도 컴퓨터 하나만 있으면 어느 나라이든 상관없이 다 가능해요. 혼자 다 감당하려고 하면 어려워요. 마음에 중심만 잡고 시작하면 나머지는 필요한 대로 외부 자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 되지요.

Q. 브랜드 초기 자금도 만만치 않을 것 같아 선뜻 나서지 못하는 것도 있는 것 같아요.


초기 자금이 적게 들지는 않아요. 요즘 100만원 가지고 시작하는 스마트 스토어, 아마존 셀러라는 광고를 많이 하는데 절대 그렇지 않아요. (웃음). 어느 정도 투자금은 있어야 하는데, 남편의 이해를 받았죠. 그 자금이 없어질 수도 있다는 것을 염두하고 남편의 동의를 먼저 구한 거예요. 내가 하려는 것이 명확하고 확고하니 남편도 지지를 해주었어요. 그러고 나니 돈에 관해 이야기를 안 하더라고요? (웃음)


Q. 내 브랜드를 직접 론칭하면서 어떤 점을 가장 많이 배우셨나요?

제가 마케팅을 10년 넘게 했는데 제품을 팔아보니 생각처럼 쉽지 않더라고요. (웃음) 브랜드를 만들어야겠다는 그림을 잡아가는 것 이상으로 실제로 시장에 들어가면 더 어려워져요. 그럴 때 이겨낼 수 있는 것은 자신감이에요. 다시 말해, 제품력을 바탕으로 나의 브랜드에 대한 자신감이 확실하게 있어야 해요. 그러면 어려운 시장이고, 지난한 과정이더라도 유지할 수 있는 힘이 계속 생겨요. 잘해보겠다고 달렸는데 끝이 보이지 않아 현타가 올 때, 자신감이 없으면 바로 무너지기 쉬죠. 그걸 이겨내려면 내 브랜드에 대한 확신을 갖고 믿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지속가능한 다음의 삶을 위해 뿌리깊은 가치관을 만들어가다.


Q. 내가 믿는 것을 통해 생기는 자신감은 인생에서도, 내 일하는데도 가장 중요한 부분인 듯해요. 그런데 자신감이 있어도 회사원, 엄마, 대표님 3가지 역할을 하는 데 지치지는 않나요? 욜리에게 일은 어떤 의미이기에 이 3가지를 다 만들어가는 것일까요?


우선 엄마와 남편의 도움을 많이 받고요. 지치지 않게 힘을 분산해서 써요. 예를 들어 회사원과 엄마를 하다가, 회사 쉴 때 브랜드를 키우면서 엄마를 하는 식이에요. 엄마 노릇도 저 혼자 다 한다기보다는 친정 엄마 도움도 받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3가지를 계속 열심히 돌리지는 않는 거죠. 이렇게 하는 이유는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면 아무것도 아닌 게 되는데, 그럴 수는 없거든요.


Q. 일이 곧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것일까요?


내가 사업을 하던, 회사원으로 일하던, 일이란 내가 어딘가에서 쓰임을 받는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것 같거든요. 나는 아직 쓸만한 존재라는 것을 계속 유지하고 싶은 거죠.


모델 장윤주가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엄마가 되고 나니 자신이 아무것도 아닌 게 되더래요. 특히 모델은 대중 앞에 서야 그 가치가 빛나는데, 집에서 육아만 하니 자신이 가치 있는 사람으로 안 느껴지더래요. 나중에 깨달은 것은 내가 존재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가치롭다라는 사실이었다는데요. 고개를 끄덕거리게 되는 이야기이지만, 저는 조금 더 큰 의미가 아직은 필요 하더라구요. 그러고 나서 보니 나는 무엇인가를 하고 있어야 내 가치가 증명되는 느낌을 받는 것을 알았어요.


브랜드를 키워나가는 것도 이것을 발전시켜 나가는 것에서 내가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는 것을 스스로 느끼기 위해서 일 수도 있어요. 잘되어서 사람들이 제 브랜드를 알고 매출도 좋으면 금상첨화죠. 그러나 꼭 그런 구체적인 성과가 아니어도 내가 이 사회에서 무엇인가를 만들어내고 있는 사람인 것만 스스로 확인하면 되는 것 같아요.



“엄마 정체성을 가지고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 이름을 가지고 사는 것에 대한 중요함도 잃고 싶지 않아요.”



Q. 그럼, 욜리는 언제 가장 행복해요?


저는 사람들하고 어울리고 관계 맺을 때 가장 행복했던 것 같아요. 어렸을 때 이런 일이 있었어요. 임원진 수련회에 제가 안타깝게 못 따라갔는데 그것만큼 억울한 적이 없는 거예요. 사람들 모이는데 내가 못 간다고 생각하니 너무 속상해서 대성통곡했던 기억이 있어요. (웃음) 그냥 놀지 못해서라기보다는 의미 있는 곳에 모이는 사람들이 좋고, 그런 사람들에게서 영감을 받아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을 어려서부터 좋아했던 거죠. 그게 지금까지도 이어져 오네요.


그리고 일하는 것이 좋아요. 일이 많더라도 즐거워요. 늘 엄마로 100% 살겠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어요. 그래서 포지셔닝을 조금 다르게 두어요. 나는 일하는 사람이고, 일하면서 아이를 양육하는 사람으로요.


그런데 미안하게도 엄마의 희생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하는 사회구조에요. 미안함과 감사함을 다 가지고 있지만 그래도 그럴 수밖에 없어요. 지금 주어진 환경 안에서 해내야 하니까요. 나중에 커서 우리 아이들의 애는 어떻게 할까요? 미안하지만 나는 그때도 내 삶을 살 거예요. (웃음) 그래서 더 엄마한테 미안해져요. 나는 미래에 엄마처럼 살고 싶지 않은데, 지금의 나는 나로 살기 위해 엄마의 희생이 필요하니까요. 미안하고 가슴은 아프지만, 이번 생에서는 포기가 안 되네요. (웃음)


Q. 진짜 이다음의 엄마들은 자신의 엄마들에게 더 이상 미안해하지 않게 사회구조적으로 변하는 부분이 있으면 좋겠어요. 마지막으로 욜리는 이다음의 삶을 위해 어떤 꿈을 꾸고 있나요?


아직 뚜렷하지는 않아요. 인생이라는 것이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까요. 다만 나는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지에 대한 질문을 끊임없이 하고 있어요. 실제로 내가 50년 넘게 일을 해야 한다면 나만의 가치관을 잘 뿌리내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살고 싶어요. 그 가치관만 있다면 일은 하고 싶을 때마다 변할 수 있는 거죠.


그동안은 실용적으로, 효율적으로 일하고 성과를 내는 것에만 집중했었던 것 같아요. 가시적인 결과물은 있는데 저를 흔들리지 않게 하는 가치관이 없는 거예요. 그런데 아직 그게 뭔지 잘 모르겠어요. 그 가치관을 찾고 단단히 하고 싶어요.


그리고 우리가 불혹을 넘기고 지천명 나이가 되면 가시적인 결과물이 안 나올 확률이 높은 것 같거든요. 그럴 때 내가 좌절하지 않고 우울해지지 않으려면 가치관이 명확하게 자리잡혀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것은 곧 매일매일 결과물이 없더라도 계속해서 버텨나갈 수 있는 힘이 되는 거죠.


한번 밖에 없는 인생, 잘하는 것을 잘해내는 것이 중요하다.


Q. 지속가능하게 나아가려면 나만의 가치관이 필요하다라는 이야기 너무 공감해요. 그럼, 뒤에 올 여성들에게 ‘일’에 대해 어떤 이야기가 해 줄 수 있나요?


내가 잘하는 것을 잘해내는 것이 일인 것 같아요. 여성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닌 남성, 여성 모두에게 필요한 거죠. 우리는 모두 분명히 각자가 잘하는 게 있는데, 그게 잘 쓰이고 누군가에 도움이 되게 하는 것 그게 ‘일'의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성과 지향적인 사람이잖아요. 그 성과 때문에 누군가가 칭찬해주고, 그것을 잘 활용하는 사람을 보는 과정이 좋거든요. 그것이 집안 일일 수도 있고, 다른 일일 수도 있어요. 완벽하지 않아도 돼요, 또 완벽할 수도 없고요. 그냥 내가 좋아하는 일을 잘하고 싶어서 무엇인가를 하다 보면, 분명 누군가에게 임팩트를 주게 되는 것 같아요. 이런 순환이 저에게는 ‘일'이에요.


어렸을 때의 저는 제 삶을 스스로 만들어가야 했어요. 그래서 선택을 신중히 했죠. 하나의 선택이 5년 뒤의 나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 고민을 치열하게 했어요. 남이 보면 순간순간 되게 재미있게 살았다고 할 수 있어요. 그러나 그 순간 나는 엄청난 고민을 하며 신중해지려고 했죠. 그런데 지금 와서 보니 그 고민이 영향을 그렇게 많이 주지 않았더라고요. (웃음)


그래서 내린 결론은 내가 하고 싶은 느낌이 들거나, 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그때만 할 수 있는 것이라는 거에요.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한번 밖에 없는 기회이죠.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할까 고민을 안할 수 없겠지만, 실제 잘못되었을 경우 커리어에 미치는 영향은 아주 미미하거든요. 그 순간에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옳은 것이니 그냥 믿고 가는 게 맞다고 저는 생각해요.


Q. 뒤에 올 분들에게 미래를 걱정하며 이 선택이 맞는 것인지 아닌지를 고민하지 말고 그 시점에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옳은 것이니 믿고 걸어가라는 말. 저에게도 해당하는 것 같아 가슴 속에 잘 담아두겠습니다. (웃음) 마지막으로 엄마로 사는 엄마여성들에게 응원이나 격려해주실 수 있나요?


모든 엄마여성들도 마찬가지예요. 앞으로 무엇인가 해보아야겠다 싶으면 자원은 많으니 주저 말고 해보라고 하고 싶어요. 내가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보다는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것에 집중해서 그것을 활용하면 돼요. 우리는 모두 무엇인가를 했어요. 예를 들어 애를 일곱 살까지 키웠다면, 이제 애를 낳는 사람한테 뭔가를 얘기를 할 수도 있는 거고요. 내가 이제 사업을 시작한 초보 사장이면, 사업을 시작하려고 생각하는 사람한테 뭔가를 얘기할 수도 있는 거지요.


저는 제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필사 모임을 하나 하고 있는데, 그 안에서도 물질적인 도움은 없어요. 그저 이런 모임을 통해 꾸준하게 나를 성찰할 기회를 주는 것만으로도 매우 감사해하면서, 그 모임을 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꼭 누군가에게 실질적인 결과물을 주는 도움이 아니어도 되어요. 내가 가진 것을 믿고 꾸준히 하다 보면 분명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될 거예요. 그래서 무엇인가를 시작하면 꾸준히 하는 것도 매우 중요해요. 그러니 주저말고 잘할 수 있는 것을 하며 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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