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라기획] 변화의 파도 위에서 다음의 삶을 꿈꾸다.
- 라라레터
- 2022년 7월 21일
- 3분 분량
라라레터 시즌 1을 마치며 <우정 편>

2018년 11월 1일은 새로운 세상에 발을 내딛던 날이다. 한평생 자본주의 시장에서 놀아나 성공의 척도가 물질이었고, 권위에 순복하고 경쟁에서 살아남는 자만 풍요로운 인생을 사는 논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내가 머물렀던 세상이 전부인 줄 알고 말이다. 세상에 말 같지 않은 일이 일어날 때면 속에서는 열불 났지만, 내가 관여한다고 달라질 일이 아니기에 눈 감고 모른 척 했다.
그런데 새로운 발걸음을 뗀 공간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생소한 분야의 사람들이 여럿 모여 신기한 대화를 주거니 받거니 했다. 아이와 함께 사무실에서 일해 본 후 어떤 공간이 필요한지 아이디어를 나누고, 시민 참여적인 도시를 그려보고, 통·번역으로 사회 혁신과 변화에 대한 이야기를 전한다는 것의 의미를 말하는 등 알 수 없는 단어가 쏟아졌고, 다차원적인 생각과 감정 핑퐁에 정신 차릴 수가 없었다. 그러나 한 번도 경험해본 적 없는 대화에 끼어 있는 것이 싫지 않았는지, 알 수 없는 두근거림이 일렁였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세상 논리에 그만 휘둘리고 변화의 파도에 올라타 보라며 누군가 잔잔한 손짓을 보낸 것은 아닌가 싶다.
이후, 많은 사람/활동가와 가치관을 만났다. 일회용 없는 삶을 실천하고 공유하는 커뮤니티 기반 카페, 질병이나 장애가 있어도 나답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적 자본을 만들어가는 네트워크, 탈시설 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해 자신의 삶을 기꺼이 담그는 기관, 사회 이슈를 주제로 임팩트 있는 영상을 만들어가는 미디어, 혁신적인 교육 방법으로 아이들의 미래를 다르게 그려가는 기업 등 손으로 다 꼽을 수 없을 정도이다. 양파 껍질 벗겨지듯 새로운 세상의 문도 하나, 둘 점차 열렸다. 그때마다 내 눈은 점점 커졌고, 탄성도 쉴 새 없이 터져 나왔으며, 가슴은 더욱더 세게 쿵쾅거렸다.
덩달아 시야도 넓어지고, 생각도 점차 변해갔다. 그러면서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새로운 세상의 경험을 다른 이들과 나누고 싶었다. 멀리멀리 물결치게 하여 다른 사람들도 변화의 파도에 올라타기를 바랐다. 함께 희망을 논하고 변화를 위해 연대하면, 다음의 세상을 살 아이들의 삶은 달라질 수 있을 것이라 믿었던 것이다. 어쩌면 이때부터 라라레터의 탄생이 예고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2021년 6월 어느 날 밤. 맥주 한 잔 마시면서 당시 진행하고 있던 연구(우리 사회에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의 삶을 가까이서 들여다보던 작업이었다.)를 위해 사례 조사를 하고 있을 때 이상하리만큼 마음이 요동쳤다. 거리에서 지내는 청소년, 정신질환이나 우울증을 앓고 있는 분, 장애를 가지고 사는 분들의 불안정한 삶은 무엇으로부터 기인하였는지 추적해가다 보니 분노가 끓어 올랐고, 반성과 공감도 일면서 눈물이 주룩 흘렀다.
이것을 계기로 사회가 규정한 정상성 범주 밖에 위치하면서 몸과 마음을 지킬 수 없었던 사람들, 그들이 외치는 자유와 자립에 대해 무게있게 생각해 보게 되었다. 자율권을 잃어버리게 되면 억압 또는 구속되어 살거나, 고립되어 살거나, 부당한 시선과 차별을 경험하면서 사는 것이 보편적이었다. 이러한 상황은 자신의 고유한 정체성에 대해 혼돈을 겪게 한다. 결국 스스로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무기력해지거나, 자신을 학대하거나,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리면서 ‘자립’이 불가해진다. 그래서 삶을 살아갈 희망을, 미래를 언감생심 꿈꿀 수가 없다.
이것은 내 이야기가 될 수 있다. 그리고 나의 아이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지금은 정상성 범주 안에 있다고 해도, 언제 갑자기 그 밖으로 밀려나게 될지 모른다. 그게 인생사 아닌가. 그렇기에 우리의 시선이 가닿아야 하는 곳이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회가 책임져 주어야 하는 부분도 있지만, 우리의 인식과 태도가 바뀌면, 우리 사회에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는 모습 그대로 다시 존재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내가 많은 이야기들을 접하면서 변해온 것처럼, 이야기들이 들리고, 보이면, 누구나 변하겠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알 수 있는 기회가 없었을 뿐 물꼬가 트이면 스르르 스며들어 자연스레 생각과 행동의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확신했다.
이 때문에 더 늦기 전에 이야기들을 연결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고, 은영과 이야기를 시작했다. 라라레터가 태어날 준비를 한 것이다.
2022년 2월, 라라레터가 공식적으로 시작되었다. 이후로(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1회 쉰 것 빼고) 지금까지 일주일에 한 번 꼬박꼬박 세상에 말을 건넸다. 시즌1은 내가 경험한 이야기들을 어떻게 연결하면 좋을지 이것저것 실험하던 과정이었다. 시즌1 마지막에 돌아보니 실패한 것도 있고, 배운 것도 있고, 성장한 것도 있다. 그래서 무엇보다 이런 실험을 할 수 있도록 삐죽빼죽, 울퉁불퉁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을 응원해주고 지지해준 분들에게 감사하다.
사실 라라레터가 지금까지 해온 이야기는 결국 더 나은 다음의 삶에 대한 희망이 있다는 메시지였다. 이 메시지를 확산하기 위해 많은 분과 연결되어 사는 이야기를 나누고 다음의 삶에 대한 희망을 그리고 싶었지만, 그 지점을 찾지는 못한 것 같다. 그래서 시즌1을 닫는 이 시점에 조금 아쉬움이 남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을 나의 시즌2 과제로 남겨두며 여기서 시즌1 마침표를 찍으려 한다.
2022. 7. 21
더 나은 다음의 삶을 위해
Truly Yours, 우정
* 더 나은 다음의 삶을 위한 이야기, 시즌2에서도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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