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라포커스] 포괄적 차별금지법의 이모저모
- 라라레터
- 2022년 7월 14일
- 4분 분량
저는 소수자, 약자, 취약계층과 같은 단어를 싫어합니다. 달리 표현하려니 풀어서 설명하는 것 외에는 딱히 사용할 단어가 없어 (글을 쓰려고 할 때면) 어쩔 수 없이 사용합니다. 저도 한 때 소수자나 취약계층 분류표에 속해 본 적이 있습니다. 여성이라는 이유에서 그랬고, 경력이 단절되었다는 이유에서 그랬습니다. 처음에는 ‘내가 왜?’라고 대들었지만, 곧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불평등, 차별, 무시, 멸시, 거절, 편견, 배제 등 합리적이지 않은 이유로 사회적으로 부당함을 겪으며 불쾌한 기분이 마음속에 머물렀던 경험이 누구나 한두개 정도는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니 비단 나만의 특수한 경험이 아닌 우리 모두의 경험일 수 있겠다 싶었던거죠.
기술이 발전되고 문화 콘텐츠 분야가 점점 고도화되면서 사회적 차별과 혐오는 더욱 세세하고 거칠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노키즈존을 둘러싼 아동 차별 논란, 여성 가입 제한 골프장, 이슬람사원 건립 반대,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가해지는 폭력, 70세 넘은 노인 가정에 정수기 렌털 금지, 다문화가정 자녀의 카톡방 감옥 등과 같은 일이 그 예시이죠. 이 현상을 끊어내려면 예방과 교육을 통해 다양성을 포용하는 연습이 우선적으로 필요합니다. 그리고 몸에 익히고 행동으로 표현되도록 해야 하는데요. 뿌리 깊이 박혀있는 차별과 혐오, 분열 구조를 뽑아내려면 때로는 법의 힘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이정표 역할을 해 줄 포괄적 차별금지법에 대해 생각해보려 합니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우리 모두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법안으로 우리 사회의 모든 사람의 존엄과 가치를 기본적으로 보호해주자는 취지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나라는 아직 시민 모두를 차별로부터 포괄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기본적인 법제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개별적 차별금지법이 존재하기는 합니다만 차별의 양상은 복합적이기 때문에 파편적으로 흩어져 있는 개별적 차별금지법의 공백을 채울 수 있다는 것이죠. 즉 포괄적 법제로 복합적인 차별을 다루겠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노동 현장의 성차별을 막기 위한 '남녀 고용 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남녀고용평등법)이나 양성평등기본법과 같은 개별적 차별금지법이 존재하지만, 이 법을 고용 외 교육, 행정 서비스, 재화·용역 등 다양한 분야에서 발생하는 성차별에 적용하기는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묻혀 두었던 혐오와 차별의 이야기를 꺼내어 사회적으로 고민하고 합의해나가는 과정을 통해 혐오와 차별 행위의 사회적 기준을 만들어 가자는 것이 포괄적 차별금지법의 큰 의의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성별, 인종, 장애, 나이, 국적, 피부색, 출신 지역, 건강 상태, 용모, 종교, 가족 및 가구 형태, 성 정체성, 성적지향, 사상, 정치적 의견, 사회적 신분 등의 이유로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여러 생활영역에서 불합리한 이유로 차별을 받는 모든 형태를 금지한다는 내용입니다. 또 사회적 합의를 통해 점진적으로 개선하기 위해 계획을 5년마다 수립해야 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고요. 차별행위의 피해자는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할 수 있으며, 시정 권고를 받은 자가 정당한 사유 없이 권고를 이행하지 않은 경우는 3천만 원 이하의 이행강제금을 부과할 수 있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은 언제 되나요?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2002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대선공약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당선되면 ‘차별금지법'을 제정하겠다고 약속하였기에 오랜 시간 의견을 모으고 수정·보완해 온 결과, 2006년 7월 국가인권위원회가 차별금지법 권고법안을 확정하였고, 2007년 법무부가 입법예고를 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여러 단체의 반대에 부딪혀 ‘성적 지향'을 비롯해 ‘학력, 출신국가, 언어, 병력, 범죄 및 보호 처분 전력, 가족 형태 및 가족 상황'의 사유를 삭제하면서 노무현 대통령의 포괄적 초안이 훼손되게 됩니다. 이후 2008년에 상정되었다가 같은 해 5월 29일 제17대 국회의 임기 만료로 폐기되죠. 이후 18, 19대 국회의 노회찬·권영길 민주노동당 의원, 김한길·최원식 민주통합당 의원이 각각 법안을 발의했지만, 통과되지 못하고 기한 만료로 폐기되는 과정이 반복되었습니다. 그리고 2021년, 21대 국회에서 삭제된 조항들을 포함하여 좀 더 포괄적으로 정의당 장혜영 의원이 차별금지법을 대표 발의하였고, 제정을 촉구하는 국민 청원이 10만 표에 달하면서 관련 이슈로 뜨거웠습니다. 하지만 1년이 넘도록 미온적인 분위기가 또 유지되는 듯 합니다. 지난 2022년 4월 11일에는 제정 촉구를 외치며 46일 동안 국회 앞에서 단식 농성한 인권 활동가분들도 계셨고, 지속되는 시민단체의 목소리로 인해 5월 25일에 공청회가 열리기도 했으나 국민의 힘의 불참으로 아쉬움만 남긴 채 끝났고요. 또 국회에서는 심사 기한을 2024년 5월까지로 미루기도 했습니다. 이번에도 15년이라는 세월 동안 반복했던 발의하고 폐기되는 과정으로 가게 될까 봐 신속히 처리되어야 하는 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습니다.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이 어려운 이유는 무엇인가요?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인데요. 일부 기독교 단체와 시민단체에서 ‘동성애' 조장 및 ‘표현의 자유' 제한의 이유로 반대하고 있어요. 법이기 때문에 어기면 처벌을 받을 것 같은 분위기라고 생각하는 것이예요. 그러나 뜯어보면 그렇지 않아요. 예를 들어 동아제약의 성차별적 면접으로 한동안 시끄러웠던 적이 있죠. 이 사건을 두고 반대하는 의견을 내놓는다고 처벌받지 않습니다. 그러나 만약 차별받았다고 신고한 사람에게 사후 불이익을 가하면 보복으로 간주하여 처벌받을 수는 있겠죠. 반복해서 이야기하자면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위해 서로 간의 관계를 형성할 때 존중과 배려로 대하는 다양성 포용 기준을 만들어가는 이정표 역할이 최우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OECD 국가 중 우리나라와 일본만이 아직 입법화되지 않았다고 해요. 이런 이유로 국제 인권 기구들에서도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지만, 일부 종교 단체와 시민 단체의 표심을 얻어야 하는 국회의원들이 움직이지 않고 있다는 것이 큰 허들입니다. 10명 이상의 국회의원이 모여 법안을 제출해야 하는데, 이것이 안된다거나,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심사를 한 후 ‘본회의'에서 최종 투표를 거쳐야 하는데 매번 제대로 된 심사가 안 되어 날아가 버려 오늘까지 오게 된거죠.
이와 유사한 법을 제정한 다른 나라의 경우는 어떤가요?
캐나다의 경우 1977년 인권법을 제정했는데요. 1985년에 인권법을 통해 13가지의 차별금지 사유를 포괄적으로 금지하였고, 1996년에는 성적지향까지 추가한 후, 2017년에는 젠더 정체성을 추가로 포함하며 차별금지법 격인 인권법을 지속해서 개정하였습니다. 이후 여군이 전투 요원으로 남성과 동등하게 임무를 수행할 수 있게 되었거나,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투표소에 접근할 수 있도록 시설을 유니버셜 디자인으로 변경하였다고 합니다.
노르웨이의 경우는 2014년 차별금지법을 처음 도입했고, 계속 개선하면서 ‘차별금지 및 평등에 관한 법안'을 2018년부터 시행하였다고 해요. 이를 통해 평등을 장려하고 사회적 참여 제한을 없애기 위해 2025년까지 유니버셜 디자인으로 교체한다는 계획을 수립하였습니다.
스웨덴도 유사합니다. 1999년 차별금지법을 적용하였고, 2004년부터 2009년까지 젠더주류화 정책을 시행했는데, 2009년부터는 법적 효력을 가지고 동성결혼을 허용하여 사회 내 차별적 인식이 줄어들었고 사회적 활동 참여도 활발해지고 있습니다. 더불어 양성평등 수준은 세계 4위에 속하며, 이민자에 대한 복지 시스템도 잘 갖추어두고 있어 유럽연합 회원국 중 1인당 가장 많은 난민을 수용하고 있는 국가라고 하네요.
이 외에도 차별금지법 도입 후 긍정적인 사회 변화를 꾸준히 경험하고 있는 나라가 많습니다.
마치며.
중요한 것은 차별금지법이 제정되었다고 갑자기 살기 좋은 나라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예요. 다른 나라의 경우에서도 알 수 있듯이 모두가 포괄적으로 보호되려면 오랜 시간 문제를 들여다보며 시정을 거듭하고 더 나은 방향으로 개선해 가야합니다. 즉, 제정 후 안착 되기까지 많은 케이스들을 모으고 우리에게 맞는 ‘포괄'을 정의해 나가야되는거죠. 이런 이유로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해결점이 아닌 시작점이 되어 우리가 속해 있는 사회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고 계속해서 개선해나가면서, 모든 사람이 자신의 있는 모습 그대로 살 수 있는 사회 시스템을 차곡차곡 만들어가는 과정이라는 것이 가장 핵심일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가 함께 머리를 맞대며 공존하는 방법을 배우게 될 것으로 생각되고요. 특히 우리 사회에 깊숙히 들어와 있는 다양한 문화를 경험할 수 밖에 없는 다음 세대를 위해서,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존중과 배려의 기준점을 제시해줄 수 있는 방편이 될 것으로 기대해 봅니다.

더 나은 다음의 삶을 위해 Truly Yours, 우정
* 본문 내용에 관련 기사가 링크되어 있으니 함께 확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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