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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라기획] 팬데믹 시대, 평안하십니까?(2) by 자옥

  • 작성자 사진: 라라레터
    라라레터
  • 2022년 5월 19일
  • 3분 분량

최종 수정일: 2022년 6월 8일

*라라레터 13호

<끝났으면, 아니 끝나지 않았으면>


글쓴이: 자옥

(소개는 글 하단을 보아주세요)



친척 둘이 있다. 같은 동네에서 자랐고 나이 차도 크지 않다. 결혼도 한두 해 간격으로 했고 자녀들 나이까지 비슷비슷하다. 그런 탓에 여느 친척 사이보다 가깝다. 가족끼리 다 모이면 무려 11명이나 되는데 이 많은 인원은 봄, 가을이면 다 같이 캠핑을 다녔고, 연말이면 연말모임을 했고, 특별한 이유 없이도 서로 시간이 맞으면 잘 모였다. 심지어 해외여행도 같이 갔다. 그래서인지 우리 사이엔 종종 배려나 예의, 존중 등등의 것들이 쉽게 무시됐다. 게다가 서열 상 내가 막내다 보니 내게는 특히 더 그런 것들이 지켜지지 않았다.


가끔은 ‘어라? 선 넘네..’ 할 때도 있었다. 그럴 땐 불편한 내색을 했다. 그 정도는 충분히 말할 수 있는 관계라고 생각했다. 그들의 생각은 나와 달랐나 보다.


“우리 사이에 이 정도 말은 할 수 있는 거 아냐? 우리가 그것밖에 안 되냐?”

“가족이니까 이런 말도 할 수 있는 거지.”란 말이 돌아왔다.


번번이 나만 예민한 사람이 되었다. “얘는 옛날부터 까칠했어.” “맞어. 어릴 때부터 그랬잖아.” 이것까지는 그래도 ‘그래 이해하자. 이제와서 뭘 바라겠어’라며 넘길 수 있었다. 근데, 아무 때나 어떤 전후 관계도 없이 불쑥불쑥 내놓는 충고와 조언은... 와, 이건 정말 견디기 힘들었다. 뭐가 그렇게 해주고 싶은 말이 많은 건지. 내가 사는 방식이 뭐가 그렇게 잘못됐다는 건지. ‘야, 너 너무 그렇게 열심히 살지 마’ ‘내가 살아보니까 다 소용없더라.’ 같은 말을 들어야 할 때는 정신이 혼미해지면서 머리까지 지끈거렸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그들의 조언은 늘어갔고, 거기다 나누는 얘기는 한없이 과거로 돌아 갔다. 그때 우리 그러지 않았냐? 그때가 좋았는데, 라며. 점점 그들을 만나기가 머뭇거려졌다. 만나서 하는 얘기 뻔할 텐데...


친한 동생이 있다. 사회에서 만난 사이인데 생각이나 성격도 잘 맞고 사는 곳도 멀지 않아 금방 가까워졌다. 근데 가깝다는 기준이 서로 많이 달랐던 것 같다. 그녀는 나와 더 가까워지길 원했다. 그런 만큼 특별한 일이 없어도 연락하는 일이 잦았고, 보자는 횟수도 늘었다. 점점 부탁도 편히 하고 바라는 것도 많아졌다. 마치 내가 친언니라도 되는 것처럼. 조금씩 그녀의 연락이 부담스러워졌다. 말이 잘 통하고 친한 건 좋은데 우리가 가족은 아니잖아? 난 가족하고도 어느 정도의 거리는 유지하고 사는데. 더 이상 가까이 다가오지는 말아주면 안 될까. 난 그게 더 편하고 좋은데.


이런저런 사람들에 지쳤을 때 즈음, 코로나가 터졌다. 외출을 자제하고 만남을 미루라고 했다. 일상이 불편해지고 건강이 염려되긴 했지만, 한편으로는 ‘잘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젠 여기저기서 보자는 말도 덜할 테고, 보자고 해도 여러 핑계 댈 것 없이 ‘코로나 좀 잠잠해지면 보자.’ 며 간단히 거절할 수 있으니. 듣는 이도 섭섭하다 할 수 없는 명확하고 깔끔한 이유가 생겼으니. 실제로도 그랬다. 가끔은 “코로나 걸려도 안 죽는대.”라는 억지를 부려가며 좀 보자는 경우도 있었지만, 보통은 "나는 괜찮은데 아이가 걸릴까 봐." 라고 하면 더 이상 강요하지 않았다. 이런저런 피곤하던 관계들이 코로나 하나로 말끔하게 해결됐다. 이렇게 후련할 수가. 이젠 누군가가 보자고 하면 생각부터 하게 된다. 이 시국에 꼭 만나야 할 사람인가, 위험을 무릎쓰고라도 만나고 싶은 사람인가. 물론 이런 생각으로 나 또한 누군가에게 보자는 말을 하지 못하게 됐지만, 어쨌든 이번 기회에 어느 정도 주변 정리가 된 듯했다.


Photo by Tina Witherspoon on Unsplash

길어야 1년이지 않을까 했던 코로나는 2년을 넘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잘됐다’ ‘후련하다’하는 마음이 요즘 들어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언제까지 이래야 하나 싶고, 다들 잘 지내고 있나 궁금하기도 하고, 가끔은 외롭다는 생각도 든다. 어느 땐 코로나 이전 생활이 그립기까지 하다. 근데 또 막상 코로나가 끝나고 예전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면 아찔하다. 그러면서도 이젠 예전이랑 똑같을 수는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코로나를 겪고 보니 모임 대신 혼자만의 시간이 편해졌다는 사람도 있을 수 있고, 그동안 혼자서 즐길 거리를 찾은 사람도 있을 테다. 가까운 남편만 봐도 그렇다. 지금까지 왜 그렇게 사람들을 많이 만났나 모르겠다고 한다. 그 시간에 취미 생활이라도 만들 걸 이라며. 코로나가 하루빨리 끝나길 바라는 마음 저만치 한 귀퉁이에는 ‘끝나면 어쩌지’라는 불안함이 있다. 코로나가 끝나면 그 많은 관계는 다 어떻게 되는 걸까. 아무 일도 없었다 는 듯이 예전으로 돌아가는 건가?





*글쓴이: <참견은 빵으로 날려 버려>, <그런 어른>의 저자 김자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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