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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라기획] 팬데믹 시대, 평안하십니까?(1)

  • 작성자 사진: 라라레터
    라라레터
  • 2022년 3월 16일
  • 3분 분량

최종 수정일: 2022년 6월 1일


<긴 시간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2020년 3월,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이 팬데믹으로 선언되었다. 제일 먼저 학교와 보육 시설의 봉쇄 조치가 강행되었다. 두 아이를 둔 워킹맘인 나는 마음이 불편해졌다.


‘회사에 뭐라고 이야기하지?’


감염증 확산 공포보다 아이 돌봄 문제로 회사에 미안한 이야기를 해야 하는 상황이 더 싫었다. 다행히도 이야기를 꺼내기 전 회사가 먼저 전면 재택 전환을 권고해서 불필요한 눈치를 볼 필요는 없어졌다. 그러나 남편 회사에서는 별다른 조치가 내려오지 않았다.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잠깐이지 않은가. 오히려 한 명이라도 집에서 일할 수 있어 아이들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슈퍼우먼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착각이었다.


야속하게 팬데믹은 기약 없이 계속되었고, 슈퍼우먼을 자청했던 어리석음으로 여러 대가를 치러야만 했다. 끊이지 않는 아이들의 고성방가를 매일의 노동요로 삼으며 회사 업무를 이어갔고, 일이 풀리지 않을 때는 동료보다는 청소기나 설거지에 의존했다. 틈틈이 빨래도 시도하였으나 빨래 개는 일은 너무 하기 싫어 어딘가에 던져 놓기 일쑤였다. 말하지 않아도 누군가 정리해주면 좋으련만, 잔소리 폭격이 떨어지기 전에는 그 자리에서 꼬깃꼬깃한 채로 계속 뭉쳐져 있거나 사방팔방 흩어져 버리는 사태가 벌어졌다. 회사 업무가 밀려와 집을 잠시라도 살피지 않으면 폭격 맞은 잔재들이 눈과 귀에 거슬려 초 예민해졌다. 보지 않으려면 사무실을 나가야한다는 것이 딱 맞는 말이었다.

아이들 돌보는 문제에서도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채 시작된 학교의 실시간 원격 수업은 아이를 검열되지 않은 유튜브 콘텐츠로 쉽게 인도했다. 그런 탓에 나는 내 컴퓨터 화면을 째려보는 동시에 아이 컴퓨터 화면도 째려보아야 하는 피로감도 생겨났다. 또한, 점점 늘어나는 인터넷 화상회의와 메신저 소통은 시간과 시간 사이를 공략하며 머리 쉴 틈을 주지 않았다. 이때를 이용하여 아이들은 자유롭게 TV나 유튜브 시청을 하며 행복감을 키워 나갔지만, 내 속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푹푹 썩는듯 했다. ‘돌봄’이란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고 보살피는 일인데,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도 풀타임 일을 하느라 제대로 된 돌봄의 역할을 이행할 수 없으니 물리적으로는 아이들 옆에 있어도 심리적으로 죄책감 내지는 불안감으로 괴로웠던 것이다.


그래도 아이들을 돌보아 주는 이모님 덕에 하루의 4시간은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다른 사람에게 돌봄의 책임을 전가하고 그 시간을 오롯이 나를 위해 움켜 쥐었다. 반 나절 동안 노트북 빈 문서 화면에 깜박이고만 있던 커서들이 빠르게 움직여야 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운 좋은 날은 계획대로 움직였지만, 그렇지 않은 날은 커피만 마시다가 시간을 날려버리기도 했다. 인터넷 쇼핑이라도 했다면 뭐라도 손에 넣게 되니 아깝지 않았을 텐데, 일의 진척이 없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민폐가 된다거나, 일 못하는 사람이 되어 버리거나, 하지 않아도 될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하는 것으로 연결되니 마음이 가벼워지지가 않았다.


그럴 때면 마음이 다급해져 남편에게 문자를 보냈다. ‘어디야? 언제 와?’ 간결하지만 강력한 호소였다. 그러나 남편이 와도 그리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이들 괴성 외 TV 소리와 남편의 말소리까지 섞이면 소음의 진폭이 더욱 커지기 때문에 정신은 훨씬 혼미해졌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노트북 닫았다 열었다 하는 무의미한 행동만 계속될 뿐이었다. 남편이 필요했던 것은 단지 공식적으로 아이들을 지키는 것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심리적 위안 때문이었다.


슈퍼우먼 노릇을 자청한 가장 큰 대가는 쨍한 햇살을 받으며 광합성 할 수 있는 시간을 모조리 반납해야 했던 것이었다. 24시간을 창살없는 감옥에서 혼자 다 감당하기 어려운 과중한 돌봄, 회사 업무, 가사 노동의 쳇 바퀴만 굴리며 사는 것이 점점 버거워졌다. 아마도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종종 마음이 시들시들해지기도 하고, 톡 건드리면 눈물샘이 곧잘 터졌다. 처음에는 뉴스에서 이야기하는 '코로나블루'려니 하며 마스크를 벗어 던지고 예전처럼 자유롭게 바깥을 돌아다니면 괜찮아질거라며 나를 내버려 두었다.


그러나 같은 모습인 채로 또 다른 1년이 시작되면서 눈물은 더 잦아졌고, 작은 일에도 화와 짜증을 내는 일이 빈번해졌다. 무엇인가를 표현하고 싶었지만 표현되지 않았던 것일까, 알아봐 주기를 바랐지만 미동도 없어서였을까. 이유 없이 남편을, 아이들을, 그리고 때로는 동료를 표독스런 눈으로 바라보기도 하고, 날 선 말들을 쉽게 내뱉으며, 분노한 맹수처럼 계속 으르렁거렸다.


멈추어야만 했다. 나를 옥죄고 있는 것을 벗어 던지고 탈출을 해야 했다.

그래서 제일 먼저 회사에 사표를 던졌다.


다니던 회사는 나에게 의미가 컸다. 육아로 7년 동안 경력이 단절된 채로 지냈는데, 그 꼬리표를 떼어준 곳이었기 때문이다. 이전의 경력을 쌓았던 분야와는 전혀 다르기도 해서 적응하려고 부단히 애썼고, 프로젝트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전심으로 일에 매달렸다. 그리고 일에서 얻는 성취감으로 매일 살아갔다. 그런 직장을 내려놓고 다시 경력 단절 여성으로 돌아간다는 것이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그렇게 코로나19는 다시 시작한 나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들었던 것이다.


일을 떠나보낸 지 이제 3개월이 되어간다. 그동안 코로나19 상황은 점점 더 악화되었다. 여전히 창살 없는 감옥에서 지내고 있고, 아이 돌봄 문제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제는 이모님 없이 홀로 아이들도 돌보고 있기 때문에 더더욱 돌봄 체제에서는 해방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아직 반납했던 광합성 놀이도 완전히 되찾지 못하고 있다.

일은 간헐적으로 하고 있다. 예전처럼 매달 통장에 안정적으로 찍히는 금액이 없어 마음이 쪼그라들거나 허할 때도 있지만 ‘일시적인 현상에 쩨쩨하게 굴지 않으리라’ 하며 툴툴 털어버린다.


다행인 것은 눈물과 분노의 횟수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그렇지만 아주 가끔 센 놈이 찾아 오기도 한다. 미처 끝내지 못한 집안 일이 그 다음 아침 그 자리에 수북히 쌓여있는 것을 보았을 때, 퇴근 후 집에 들어와도 쉴 수가 없다는 남편의 푸념을 듣게 될 때, 몇 년을 오지에서 혼자 일하며 살아온 것 마냥 부동산 전화나 홍보 전화 외에는 안부를 물어오는 전화 한 통 없다는 것에 심하게 쓸쓸해질 때, 그럴 때 마다 문득 찾아오는 것 같다. 봄이 오면 마음에 꽃 바람 불어 좋아질까 생각하지만 달라지지 않은 삶의 흐름에 어떻게 될 지 사실 잘 모르겠다.

[Photo by bady abbas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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