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의 시계] 위기가 우리를 찾아올 때 고개를 드는 차별과 혐오
- 라라레터
- 2022년 6월 13일
- 4분 분량
최종 수정일: 2022년 6월 17일
*라라레터17호
글쓴이: 박아영
(소개는 글 하단을 보아주세요)
2년 반 정도의 시간이 무겁게 지나고 나서야 사회적 거리두기가 사라졌다. 우리가 누려온 일상으로의 회귀가 반갑고, 만나지 못했던 사람을 만나고 하지 못했던 것을 할 수 있다는 희망만으로도 활기가 돈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이 우리 일상에 남긴 흔적은 아직 모습을 다 드러내지 않은 것 같다. 무엇보다 팬데믹을 거치면서 똬리를 틀고 자리 잡은 우리 안의 불안과 갈등이 이후 어떤 모습을 띨지는 지금으로서 더더욱 알기 어려워 걱정스럽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데는 미국에서 들려온 안타깝고도 슬픈 소식이 큰 영향을 미쳤다. 작년 우리나라에서도 큰 반향을 일으킨 미국 애틀랜타에서 일어난 총격 사건이다. 총격 사건은 우리나라에서 거의 일어나지 않는 사건이기에 주목도가 높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이번 사건의 희생자 8명 중 6명이 아시아계였고, 그중 4명이 한국인이었기 때문에 더욱더 충격적이었다. 어쩌다 희생자가 아시아계, 한국계 미국인인 것이 아니었다. 이후로도 이유 없이 아시아계 사람, 특히 여성과 노인처럼 상대적으로 사회적 약자가 아무 이유없이 폭행당하거나 심한 경우 살해당하는 일이 재차 일어났고, 미디어가 무게감을 갖고 다루기 시작하면서 미국 내 아시아계에 대한 혐오와 차별은 중요한 이슈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런 차별과 혐오 사건은 전혀 새로운 일이 아니었다. 오랜 시간 미국 사회 내에서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있었지만,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그래서 고통받은 피해자들이 분명 존재했지만 이들이 사회적으로 존재하지 못했던 오랜 시간이 쌓여있었다.
지금처럼 사회적 문제로 논란을 불러일으킬 만큼 사건이 집중적으로 일어난 기저에는 코로나19가 가져온 경제적 침체, 불안정성, 그리고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있다. 인류 역사에 기록될 재난 상황을 이겨내려 전 인류가 노력했고, 코로나19의 긴 터널을 많은 사람의 희생과 노력으로 지나가고 있다. 이런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을 눈 앞에 두고 누군가에게 책임을 돌리거나 화풀이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 쉽다. 하지만 타인의 인권을 짓밟고 생명을 위협하는 파괴적 행동은 어떠한 이유에서 용납될 수 없고, 정당화될 수 없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의 불안과 원망하고 싶은 마음에 불을 지피는 역할을 한 것은 다름 아닌 정치권이었다. 다양성을 포용하고 통합을 위해 애써야 하는 책임이 그 누구보다 큰 정치세력이 코로나19 팬데믹의 위기 상황을 정치적으로 모면하고, 더 나아가 활용하기 위해 특정 집단을 적대하고 갈라놓는 분위기를 적극적으로 조성했다. 대표적으로 미국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코로나19를 중국 독감(China Flu)으로 의도적으로 지칭하며, 지금 우리가 겪는 혼란과 고통의 책임을 중국으로 돌렸고, 비난과 분노로 가득 찬 대중의 시선을 한쪽으로 쏠리게 했다. 아시아계인을 낙인찍는 분위기 속에서 누군가는 길을 지나다가 혹은 가게에 들어가 아시아계 미국인, 그중에서도 여성이나 노약자에게 아무 이유 없이 욕설을 퍼붓고, 무차별 폭행을 가하며, 목숨까지 위협하는 사람이 등장했다. 아시아계를 목표로 하는 증오 혐오 범죄 신고가 2020년 대비 2021년 339% 증가했다는 ‘증오와 극단주의 연구 센터(the Center for the Study of Hate and Extremism)’의 발표는 혐오가 가져오는 분노의 현실을 차갑게 보여준다.

[출처: Jason Leung on Unsplash]
이러한 혐오⋅증오 범죄가 계속되는 가운데, 과거와는 다른 방식으로 아시아계 커뮤니티가 대응에 나섰다. 피해의 당사자인 아시아인들이 더 이상 침묵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가장 먼저 소셜미디어에서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스톱아시안헤이트(#StopAsianHate)라는 해시태그를 달고 차별과 혐오에서 시작된 피해의 경험을 공유하고, 사회적 관심을 촉구하기 시작했다.

[인스타그램에서 #stopaapihate 해시태그를 달고 개인이 올린 다양한 메시지 (출처: 직접 캡쳐)]
이렇듯 개인이 나서기 시작한데에는 정부가 나서주길 기다렸던 과거의 수동적인 태도로는 무엇도 바뀌지 않음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누군가가 문제로 봐주지 않는다면 문제가 될 수 없고, 피해가 생겨도 제대로 호소할 수조차 없었던 과거의 교훈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용기 있게 나선 수많은 개인의 목소리 하나하나, 그리고 함께 외쳐준 사회 유명 인사의 지지에 힘입어 일어난 많은 변화는 ‘스톱 AAPI 헤이트(Stop AAPI Hate)’라는 비영리단체가 설립되는 동력이 되었고, 아시아계 미국인 커뮤니티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행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토대가 되었다. 피해를 피해로 봐주지 않아 경찰에 제대로 신고조차 하지 못했고, 그래서 실제 일어났지만 일어나지 않은 일이 되어 버렸던 문제가 이제서야 제대로 공론화되기 시작했다. ‘스톱 AAPI 헤이트'는 피해자 신고 접수부터 이후의 과정을 지원하는 센터로서의 기본적인 역할을 하는 한편, 아시아인에 대한 미국 사회 내 혐오와 차별이 실재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설득할 수 있는 객관적 데이터와 자료를 수집⋅가공하여 사회적 관심을 환기하고, 더 나아가 사회적 압력을 만들어내고 있다. 당사자 목소리와 함께 사회적 데이터가 축적되니 사회가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고, 부조리한 차별과 정당하지 못한 폭력이 아시아인에게 가해지고 있음을 인정하기 시작하면서 ‘코로나19 증오 범죄법(Covid-19 Hate Crimes Act)' 제정과 같은 제도적 변화도 이어지고 있다. 5월의 마지막 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BTS를 백악관으로 초대해 아시아계를 향한 증오범죄 근절의 메시지를 나누는 모습은 이러한 변화의 상징처럼 보이기도 한다. 다행스러운 움직임이지만, 개개인의 마음속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는 차별과 혐오의 감정을 포용과 존중으로 바꾸는 일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스톱 AAPI 헤이트'도 이러한 본질을 잘 알고 있기에 활동의 방향성과 내용을 장기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다. 아시아계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처벌할 수 있는 강력한 제도가 생긴다고 하더라도, 결국에 우리가 원하는 것은 차별과 혐오가 없는 사회일 것이다.
지금까지의 이야기가 미국만의 이야기라고 느끼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우리 안에서도 비슷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코로나19 초기, 중국인의 입국을 금지해달라는 청원도 많은 사람의 동의를 얻었고, 중국인에 대한 차별과 혐오가 있었다. 코로나19에 감염된 집단이나 개인에 대한 신상 털기를 비롯해 온라인 공격도 벌어졌다. 혐오와 차별은 인간의 내밀한 불안과 함께 찾아오기에 쉽게 조장되기 쉽다. 당장의 이익과 안전 여부에 따라 우리와 남을 구별 짓고, 그 구별이 쉽게 차별적 사고나 행동으로 이어지는 걸 일상 안에서도 경험하고 있다. 그렇기에 다양성을 존중하고 타인을 향한 공감의 태도를 갖기 위해 우리는 의식적으로 노력하고 학습해야 한다. 코로나19 팬데믹이 가져다준 가장 강력한 감각이 있다면 나와 타인, 세계가 연결되어 상호 무관하지 않다는 연결감이다. 이 연결감을 유지하며 다양한 존재가 살아가는 세상을 제대로 바라보기 위해서는 나와 내가 속한 공동체의 경계를 넘어 생각하고 공감, 이해하려는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지금 우리는 연결과 분열의 대립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함께’ 살아갈지 중요한 질문을 받고 있는지도 모른다.
박아영:
세상 변화에 관심이 많아 사회혁신을 주제로 꾸준히 일을 해왔다. 넘쳐나는 호기심을 마주하며 매일 조금이라도 세상을 더 탐구하고 이해하려 노력하고 있으며, 말을 골라내는 작업을 통해 이해한 바를 글로 나누고 싶어 한다. 그 매개체인 언어에 관심이 많아 번역 작업도 한다.
https://medium.com/@ahyoung-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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