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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라기획] 매우 가정적인 엄마

  • 작성자 사진: 라라레터
    라라레터
  • 2022년 2월 16일
  • 3분 분량

최종 수정일: 2022년 2월 22일

* 한국인멸종위기관리국등기접수 제278361-29304719호


안녕하세요, 저는 매우 가정적인 엄마 오지은이라고 합니다.

오늘 이렇게 당국에 정식으로 편지를 쓰는 이유는 과거에 제가 받지 못했던 수당을 청구하기 위해서입니다. 저는 1981년생으로 코로나19 시기에 초등학생과 중학생을 돌보던 ‘엄마’였던 세대입니다. 요즘은 ‘엄마’라는 계층 자체가 거의 없어서 생소할 수 있겠지만, 50년 전만 해도 아무런 경제적 보상 없이 아이들을 돌보던 여자들이 있었습니다. 2020년 당시 저는 맞벌이(예전에는 시민연대 – 옛말로 ‘부부 ’– 중 여성인 사람이 일을 하면 그것을 남성과 함께 돈을 번다해서 '맞벌이'라고 불렀습니다)를 하고 있었고, 학교와 보육 시설 모두 장기간 문을 닫으면서 다니던 회사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시 남편이 저보다 급여가 높았고, 요즘은 전문 남성 양육사도 있지만, 당시에 남자가 직장을 그만두고 무상으로 아이를 돌보는 것이 일반적인 일은 아니었습니다. 저는 그래도 머지 않아 다시 일을 할 수 있게 될 거라 생각했습니다.

당시 저는 초등학교 3학년, 중학교 2학년(지금은 학교 자체가 사라졌지만, 과거에는 초중고 12년을 국가가 지정한 교육을 받도록 했습니다), 이렇게 두 아이를 키우고 있었는데, 한 아이는 주 2회, 또는 주 3회 밖에 학교에 가지 못했고, 한 아이는 격주로 등교했기 때문에, 가정 돌봄이 필요한 아이가 없는 날은 거의 없었습니다. 또한 언제 학교가 다시 폐쇄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아이가 둘이나 있는 저를 정규직 - 이 또한 지금은 사라진 개념입니다. 계속 부연 설명을 하려면 편지가 너무 길어지니 근대사 자료를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 으로 고용하려는 회사는 없었습니다.

2020년 한 해 동안 재취업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열악한 디지털 환경에 아이들을 노출시켜 놓고 어른도 없는 집에서 초등 3학년과 중학교 2학년을 하루 종일 둘 수는 없었으니까요. 그렇게 2021년이 되었고 백신 접종률이 높아짐에 따라 저는 이제야 일을 다시 시작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위드 코로나'라는 이름으로 2021년 11월 1일부터 모두가 일상으로 복귀를 한다고 했고, 당시 이미 주 양육자(대부분 여성)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거의 정상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11월부터는 근무할 수 있다고 보고 수 차례 면접 끝에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11월부터 근무하라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11월 1일이 되기 3일 전인 10월 31일 금요일 오후, 학교에서는 전면 등교를 수능 이후로 미룬다는 공문을 보내왔습니다. 수능은 천재지변이 아니었음에도, 위드 코로나 실행 3일 전, 또 아이들이 학교에 갈 수 없다는 통보를 받은 것입니다. 약속했던 일자리는 또 물 건너 갔고, 저는 그 뒤로 전과 비슷하거나 더 나은 수준의 직장을 다시는 찾지 못했습니다.

코로나19 2년 동안 국가(교육부가 정부 소속이니 국가라고 표현하겠습니다)는 한 번도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안전하게 학교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지원할까’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학교에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게 하면서 지금 시스템을 유지할 수 있을까’를 기준으로 모든 의사 결정을 내렸습니다. 당사자인 학생과 학부모와는 한 번도 상의하지 않았습니다. 수 많은 여성이 일자리를 잃거나 새로운 일을 시작하지 못해 발생한 피해, 그리고 응당 제공해야 할 교육 서비스를 성실히 제공하지 않아 학생들이 받은 피해에 대한 보상에 앞서, 최소한 2년 간 국가가 한 가정의 주 양육자에게 지급해야 했으나 지급하지 않았던 양육 수당을 청구합니다.


2071년 11월 1일

오지은


*첨부파일: 매우가정적인엄마.xls


한국인멸종위기관리국을 통해 접수된 오지은 씨의 이러한 요구는 2070년대에 얼마 남지 않은 엄마 세대 사이에 반향을 일으켰고, 그들은 여전히 국가를 상대로 소송 중이다. 통계청의 자료에 따르면, 2019년에 서울・인천・경기, 즉 당시 인구 과밀 지역인 수도권에 미성년자가 있는 가구 수는 총 2,518,998가구였다. 만약 오지은 씨와 같은 조건으로 이들 가구의 주 양육을 담당했던 사람들에게 양육 수당을 지급해야 한다면 그 비용은 총 50조에 달한다(현재 화폐 가치로 135조 KRW에 해당). 만약 당시 법으로 아이들이 집에서 머물러야 하는 시간이 길어짐에 따라 자연히 발생하는 추가 돌봄 노동에 대해 수당을 지급해야 했다면, 아이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교육을 국가가 성실하게 제공하지 않아 발생한 손해를 배상해야 했다면, 한국 정부는 일관되고 임시적인 태도로 '학생은 학교에 오지 말라'와 같은 의사 결정을 내릴 수 없었을 것이다.


2년이라는 시간 동안에 '문을 닫는 것’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는 태도를 보인 한국 정부가 재생산을 담당하고 양육을 맡아야 했던 여성들에게 던진 메시지는 분명했다.


‘당신이 엄마가 되기로 했다는 것은 우리(국가)가 필요하다고 판단했을 시 당신들의 시간을 언제든지 가져다 쓸 수 있다는 19년 종신 계약에 서명한 것과 같습니다. 혹시 모르셨나요?’


한국 여성들은 이 메시지를 정확하게 수신했다. 코로나 2년을 계기로 이미 지구적 관점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던 한국의 출산율은 더이상 내려갈 바닥을 찾지 못할 정도로 떨어졌다. 출산과 더불어 양육에 대한 기피 현상은 더욱 심화하여서, 현재 한국은 주요 노동력 수입국으로서 대부분의 노동력을 제3세계 국가들로부터 구매하고 있다. 당시 아이를 여러 명 낳으면 지급하는 수당은 100만 원에서 200만 원, 7세 미만의 아동에게 지급되는 아동수당 10만 원 등으로, 없는것 보다는 있는 게 더 나았겠지만, 실질적인 변화는 전혀 일으키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출산과 육아는 경제적 부담이 큰 것도 사실이었지만 돈으로 살 수 없는 시간이라는 자원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일이었고 한국 남성들은 이에 대해 끝까지 ‘여자도 군대 가라’같은 논리를 펼치며 자신들의 시간 자원을 양보하지 않았으며 한국의 자본도 남성들이 육아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데 실패했다. 한국 자본은 한 노동자(남자)의 연봉 안에 그의 아내, 아이들이 지원하는 물질・정서적 지원을 모두 포함시켜 이용하는데 너무나 익숙했고 인건비 상승만큼 큰 손실로 여기는 것도 없었다. 21세기 초반의 엄마 계층은 끊임없는 이중 노동에 시달렸기에 당대 여성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알 수 있는 자료는 많지 않다. 모든 자료는 SNS와 당시 유행하던 네이버(*현 ㅇㅇ그룹) 맘카페에 남아있는 비공개적이고 파편화 된 데이터 뿐으로 이에 대한 연구 역시 부족한 실정이다. 그들에게는 글 쓸 시간이 없었고, 본인 입으로 ‘가중된 양육 부담을 경제적으로 보상하라’같은 말을 꺼내기에 너무나 큰 모성 이데올로기에 오래도록 짓눌려 있었다. 한국 내 한국인의 비율이 60%대로 진입했다. 오지은 할머니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기에 너무 늦은 걸까?


라라일보 손김윤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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