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라포커스] 몸에 대한 긍정에 대한 컬럼, <근육 포텐 터지는 여자들>
- 라라레터
- 2022년 6월 2일
- 4분 분량
최종 수정일: 2022년 6월 8일
“내 몸을 내가 써서 하고 싶은 운동을 좀 한다는데 누가 뭐라 할 것인가.”
너무 당연한 이야기 같지만, ‘운동’이라는 영역에서조차, 아니, 특히 ‘운동’이라는 영역에서 여성들에게 누가 뭐라고들 많이 했었습니다. “여자가 무슨?”이라는 말로 제동이 많이 걸렸죠. 그 넓디 넓은 운동장 전면을 거의 다 차지하고 놀았던 것은 ‘남자 아이들’이었죠.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이야기되듯, ‘여자 아이들’은 기껏해야 피구, 또는 고무줄 뛰기를 운동장 한 켠에서 하곤 했죠(참고로 필자는 80년대에 ‘국민학교’를 다녔던 세대입니다). 1996 애틀랜타 올림픽의 여성 선수 비율이 34%였고, 2020 도쿄 올림픽 참가 여성 선수 비율이 48.5%로 사상 처음 남녀성비가 거의 1:1이 되었어요. 현재 여러 스포츠 분야에 진출해있는 여성들이 얼마나 많은 편견의 허들을 넘고 여기까지 왔을까요?
요즘 TV를 보면 흐뭇합니다. 운동 예능은 남자들만 해왔던 선례를 깨고 등장한, ‘노는 언니’, ‘골 때리는 그녀들’, 코메디언 김민경이 진행하는 ‘오늘부터 운동뚱’, 최근의 ‘마녀체력농구부’까지, 2020 도쿄올림픽에서 활약한 여성 선수들이 우리나라 여성들의 마음에 지핀 불꽃에 더욱 기름을 부어주고 있습니다. 도쿄올림픽 배구 4강에 진출한 여자대표팀의 경기에서 보여진, 피지컬 파워, 여성리더십, 팀웍, 플레이 빌드업 과정 등은 같은 여자들을 흥분시키며, 나도 도전하고 부딪히고 싶은 뜨거운 심장을 갖고 있음을 깨닫게 했죠. 여성스포츠예능의 인기가 올라감에 따라 인천의 모 축구클럽의 입단문의가 5배 이상 증가하였다고 합니다.
대략 4년 전 즈음부터였을까요. 예쁜 몸매를 위한 운동이 아니라, 운동 그 자체를 즐기기 위한 운동을 하는 여성들이 주목받고 그에 관련된 이야기가 각종 매체에서 등장하기 시작했어요: <마녀체력>(2018)을 쓴 이영미 작가는 30대 말에 고혈압 진단을 받았지만, 지금은 철인3종경기 15회, 마라톤 풀코스 10회 완주기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녀는 말합니다. “10여 년 다져 온 체력은 단단해진 겉모습뿐 아니라 생활, 성격, 인간관계, 게다가 다가올 미래와 꿈마저도 놀라울 정도로 바꿔버렸다.” 이것은, 그간 억눌려왔던 활동의 범주가 우리의 겉모습, 생활, 성격, 인간관계, 미래의 계획까지도 제한하여 왔다고 해석될 수 있을 겁니다.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축구>(김혼비, 민음사, 2018)는 축구를 잘하고 싶어서 근육을 키우고, 축구하는 데 거추장스러워 머리를 짧게 자른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아, 나도 하고 싶었는데!’하며 기회를 놓친 우리들의 이야기이기도 하고요.
사회가 여성의 몸에 지운 기준에 갇혀 운신의 폭이 운동장 한 켠일 수밖에 없었던 그 때는, 피부가 많이 타지 않는, 흉터로 남을 상처가 많이 생기지 않는, 종아리나 팔뚝이 근육으로 두꺼워지지 않는 운동이 우리 여성들의 운동인 줄 알았죠. 그런데 얼마 전 ‘골 때리는 그녀들’의 언니들이 근육이 생겨 다리가 굵어졌다며 기분 좋아하는 모습을 보며 저도 모르게 씨익 웃으며 쾌감을 느꼈습니다. ‘스트릿우먼파이터’들이 자신만의 강력한 표현을 위해 힘과 근육을 우선적으로 갖추는, 그 ‘아랑곳 하지 않는’ 모습에서 해방감을 느꼈습니다. 각자 자신이 원하는 활동에 나의 몸을 최적화시켰습니다.

이런 흐뭇한 장면들이, 한 때 매체에서 활용된 한 캐릭터로서만 머물지 않기를 바랍니다. TV에서만 볼 수 있는 캐릭터로 남지 않도록, 여러분 마음 속의 그 두근거림에 집중해보시면 좋겠어요. 이 좋은 걸 여러분도 같이 했으면 하는 사심이 마구 분출되기에, 오늘의 ‘라라포커스’는 주제와 관통하는 저의 사적인 경험에 포커싱하여 이야기를 풀어보겠습니다.
어머니께서 테니스를 좋아하신 덕에 저는 일찍이 중학생 시절 잠시 레슨을 받았던 적이 있었는데, 그 때 뇌리에 박힌 테니스의 매력이 계속 남아있어 오랜 시간 뒤 다시 시작하는 데에 도움을 준 것 같아요. 참 감사한 일이지요.
2012년 출산을 하고 이사를 했는데, 이사 간 아파트 바로 앞에 테니스 코트가 떡 하니 있는 게 아니겠어요? 당시 출산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당장 시작하지 못했지만, 침을 줄줄 흘리며 탐내고 있다가 2014년 1월 2일 드디어 테니스와 다시 만났더랬습니다. 출산 후 제대로 관리하지 않은 몸은 체중도 많이 나가고, 근육이나 관절이 저 자신조차도 알 수 없는 상태였어요. 테니스 레슨은 고작 20분 동안만 하는데요, 그게 ‘고작’이 아니더라고요. 쉬지 않고 20분을 내리 빠른 잔걸음으로 좌우를 왔다 갔다 하다 보면 숨이 턱까지 차오릅니다. 처음엔 일 이분만 지나도 미칠 지경이었어요.
‘‘날으는 돈까스’로 불리웠던 내가 이렇게 한심한 퍼포먼스를 보이다니!’
마음은 저만치 달려가지만 몸이 언제 이렇게 된 것인가 싶어 솔직히 너무 많이 속상했습니다. 저 혼자였다면 아마 중간에 포기했을지 몰라요. 그 테니스 코트에는 동네 언니들이 많았어요. 다 같이 잘 치지도 못하면서 깔깔 대고 좋아지면 ‘좋아졌다.’ 칭찬해주고, 치는 모습을 서로 촬영해주어 복습하는 데 도움을 주기도 하는 등, ‘우리의 팀워크’가 하루 하루 버텨가게 해주었다고 생각해요. 한편, 테니스를 칠 때 굳이 그 짧은 스커트 운동복을 왜 입고 할까?’, ‘좀 민망하고 불편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는데요, 그게 아니었어요. 일단 시원해서 능률이 오르고요, 운동도 폼 나게 차려 입고 하니 더 즐거웠어요. 운동과 연결되는 요모조모를 모두 즐길 때 더 흥이 나는 것이었어요. 누구 보여주자고 입나요? 나의 제 2의 정체성을 멋있게 그려가기 위한 연출인걸요.
뜨겁고 치열한 여름을 세 차례 정도 보냈을 거예요. 선크림이 땀에 다 녹아 흘러 내려도 다시 바를 틈도 없이 게임에 게임을 거듭했죠. 얼굴은 기미로 가득 차고, 땀 구멍이 커지고 쳐졌어요. 팔・ 다리는 여름만 되면, 발 부분만 하얗고 나머지는 초코칩쿠키 색으로 짙게 ‘구릿빛으로!’ 탔어요. 오른쪽 팔꿈치 관절과 손목관절은 늘 잔잔하게 통증을 수반하고 있었지만 즐거움을 위해 충분히 안고 지고 갈만한 것이었어요. 그러한 시간이 4년, 5년 계속 흘러가면서 제 오른손은 왼손보다 1cm가량 더 넓어져 있었고요, 오른 손등의 혈관들은 여러 가닥 불룩 불룩 나왔죠. 오른팔이 왼팔보다 훨씬 두꺼워진 것은 말할 것도 없고요. 가끔씩 거울을 보고 화장품을 바를 때 투박한 제 오른손이 눈에 띄어 깜짝 놀라긴 했는데, 순간 그것이 ‘남성적’ 요소라고 인지함에 따른 것이었겠죠. ‘아니야, 이건 나에게 훈장과도 같은 것이야.’라는 생각으로 이내 그 불편함을 떨쳐내곤 했어요. 오히려 두꺼워진 팔, 그리고 테니스 게임의 준비자세인 스쿼트 자세를 늘 취하면서 돌처럼(?) 단단해진 허벅지는 제 자랑거리가 되었어요.
이처럼 제 몸은 테니스를 잘 치기 위한 상태가 되어갔고, 퍼포먼스가 잘 나올수록 저의 또 하나의 정체성으로 자리잡아 갔습니다. 제가 가진 물리적 힘을 최대한 끌어올리고, 그것을 테니스의 폼에 반영하고, 최대한 잔발을 뛰어 공과 나와의 거리를 최적화하고, 끝까지 공을 보고 원하는 공격을 하는 이 콤비네이션은, 감히 말씀 드리건데, 스스로 가장 멋져 보이는 시간을 선사합니다. 파워풀한 샷을 보낼 때, 상대가 그 샷이 어디로 올지 파악하였어도, 그 힘 때문에 받아치지 못할 때, 상대의 샷을 순발력 있게 대응하여 오히려 나의 공격이 먹혔을 때, 상대가 전혀 알 수 없는 코스로 순간적으로 공을 보내어 속수무책인 모습을 볼 때, 불꽃 서브로 서브 에이스를 먹일 때, 기술 점수와 예술 점수가 적절하게 배합된 동작들을 구사하면서 ‘아무리 힘들어도 이건 계속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올해로 꼭 8년을 채웠고,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오른쪽 손목이 계속 욱씬욱씬 합니다. 그런데 이제 이 통증은 저의 일부입니다.
운동하면서 자신이 가진 힘이 어디까지인지 한번 느껴보세요.
운동하면서 안타까움 또는 환희의 포효도 질러보세요.
못 해 본 것이니 해보시라는 것이 아니고요, 해보시면 ‘내가 살아가는데 내 몸의 극히 일부만 써왔구나. 이렇게 다 써보니 느껴지는 게 너무 풍성하다.’라고 느끼게 될 것이라 확신해요. 그러나 꼭 기억해주세요. 지도자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몸에 적절하게 올바른 자세로 해야 오래 할 수 있습니다. 혹시 다치면 회복이 오래 걸리는 연령대이신가요? 조심은 해야겠지만 그렇다고 겁은 내지 마셔요. 제가 알고 있는 많은 언니들이 병원 다니시면서도 계속 열심히 운동 하십니다. 결국은 낫고, 운동하면서 낫습니다.
여러분! 라라레터가 여러분을 ‘추앙합니다’. 여러분이 무엇을 하시든 옳고, 괜찮습니다.
응원의 감정을 담뿍 담아,
은영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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